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
이우일 지음 / 비채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퐅랜(포틀랜드), 그냥 좋은 그곳에 대하여

 

예전에 일본의 작은 소도시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동안 일본 도시를 설명하는 다큐멘터리, 책, 사진을 통해 봤지만, 내가 눈으로 확인한 것은 우리 동네에서도 볼 수 있는 한적함이었다. 고요하기도 하고 간간히 사람들의 시선에는 여행자인 나를 향한 낯섦이 없었다. 카메라를 들고서 별거 아는 일상 속 모습을 찍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일본 소도시를 찾아간 나에게 몇몇 친구들은 이렇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관광하러 가는 곳에 안가고 왜 그리로 가느냐."고 말이다. 그때 난 "그냥, 좋잖아"라는 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내 대답이 마음에 안들은 눈치였지만 이내 내가 선물하는 작은 기념품에 시선을 돌리는 친구를 보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작은 소도시에서 끝내 발견한 것은 익숙함이었지만, 처음부터 익숙함이 눈에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새로 찾은 도시의 첫인상은 언제나 저마다 모양과 색깔이 달랐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익숙해지면 그 도시에서의 삶도 떠나온 곳에서의 삶과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론 반가웠고, 다른 한편으론 아쉬웠다." 난 장기 여행이 아니어서 이와 같지 않지만, 도시에서 익숙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그 도시만의 독특한 점을 발견하는 것도 다 좋았다. 서문에 적혀있던 저 문장을 보고서 난 퐅랜만의 독특한 일상 그리고 특별함을 기대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다니 그 도시의 익숙함이 보였다.


이유가 특별히 없다면 그 자체가 바로 목적이 아닐까. 어쩌면 새로움과 낯섦을 찾아 헤매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목적일지 모른다.


비내리는 곳, 파월 북스가 있는 곳, 세인트 존스 다리에서 볼 수 있는 불꽃놀이,타투와 문신한 사람들이 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곳, 마리화나 연기 속을 조깅하는 사람들. 한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 포틀랜드에는 있다. 이우일씨의 표현처럼 "이곳 사람들이 유별나다". 처음에 낯선 모습들이 보인다. 그 낯섦이 지금의 포틀랜드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살펴보고 이우일씨의 생각을 확인하다 보면, 그곳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란 사실이 선명히 보인다. 이우일씨만의 생각은 화려한 수식이나 묘사가 없는 대신 단백하고 깔끔한 이야기가 (가본적없는) 포틀랜드와 닮아 있어 보인다. 어느 새 자신의 또다른 집이 된 포틀랜드에 대한 만화가 이우일의 글에는 포틀랜드 일상 속에 그가 얻은 소소한 깨달음이 담겨 있다. 중간중간에 있는 삽화는 피식 웃게 하기도 하고, 그 곳의 풍경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나는 작고 아담한 이 도시가 좋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크기가 안정감을 준다. 퐅랜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은 도시이고, 그래서 살아보니 정이 간다. 나와 도시를 조화시킬 수 있다는 느낌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와 우연히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자신의 삶의 크기와 속도와 들어맞는 도시에서 산다는 건 축복이다. 이우일씨에게 포틀랜드는 행운이자 축복이었다. 물론 행운과 축복은 영원히 지속되는 일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동이 옅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퐅랜의 특별함이 익숙함으로 바뀌어도 싫지 않다. 아마도 그 마지막에 대해 이우일씨는 명쾌한 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답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엔 끝이 있다.
끝이 있으니 우린 즐기며 살 수 있다.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

 

나는 여기서 내가 일본 소도시에서 발견했던 일상을 발견한 이유를 찾았다. "그냥."이라는 한마디가 아닌 조금 더 구체적인 이유를 말이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가서 발견한 일상이 싫지 않고 그냥 좋았다는 말 대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