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 2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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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처음에 <나의 투쟁 2>를 읽으며 기대했던 내용은 위 내용(실제 내용)이 아니었다. 아버지에 대해 꽤 긴 서사로 풀어낸 <나의 투쟁1>의 연장선 상의 이야기가 될 줄 알았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더 풀어 낼 줄 알았다. 하지만 이는 내 기대였다. 저자가 이 이야기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 <나의 투쟁2>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연애. 결혼. 육아. 
한 사람의 연인이 되고, 한 사람의 동반자가 되고, 세 아이의 부모가 되어 사는 일상 중에  좀처럼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한 사람의 고백이 <나의 투쟁 2>의 줄거리다. 이 이야기가 특별한 것은 그 한 사람의 나이가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의 중년 남성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고, 그 속마음을 좀처럼 다룬 문학 작품이 많이 접하지 못했기에, <나의 투쟁 2>는 나에게 특별한 소설이 되었다. 

그의 일상 속에 느끼는 생각은  이야기가 진행되던 중간중간에 툭툭 나온다. 누구나 한 번쯤 아니, 매일매일 해본 것이다. 길을 걷다가,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잠을 자기 직전에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누군가와 마주치면서, 누군가와 마주치지 않고 혼자 있을 때도 우리는 계속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을 글로 서술해두지 않을 뿐, 생각은 끊임없이 한다. 오베도 마찮가지다 자신의 곁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행복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힘들게 하는 2명의 아이에 대한 생각, 태어나지 않은 태아와 함께 하는 아내 린다에 대한 생각, 친구와의 대화, 길가에 걸어가다 만나는 사람들을 보며 드는 생각을 그는 끊임없이 말한다. 그리고 그의 말하기는 그 순간뿐만 아니라, 과거에 아내를 만났을 때를 회상할 때도 마치 회상이 아니라 그 순간에 그가 있는 듯한 이야기를 한다. 

인간은 같은 조건으로 평등하게 태어나지만 성장하면서 접하는 외부적 환경 때문에 저마다 다른 인성을 형성한다고 하는 말은 진실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진실은 이와 정반대다. 인간은 저마다 아른 인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외부적 환경에 따라 서로 비슷비슷하게 또는 평등하게 변해간다.
34쪽

나는 성인이 된 후 타인과의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그것은 살아가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기도 하다. 나는 생각과 느낌으로 타인에게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다가갈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 상대방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거나 나를 거부하게 되면 나는 순식간에 내면의 폭풍을 경험하게 되고 고통스러워한다. 
70쪽

내가 현실을 혐오하는 이유는 현재의 삶이 무의미함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115쪽

내가 대도시에 사는 이유는 전적으로 혼자 있고 싶기 때문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불특정 대다수의 낯선 얼굴들 속에선 마음의 문을 닫고 거리를 두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낯선 얼굴들의 파도 속에서 혼자 헤엄칠 수 있다는 것은 대도시의 장점이기도 하다. 온갖 형태의 사람이 모여드는 지하철역. 기차와 거리와 카페 그리고 대형 쇼핑센터
거리감, 거리감. 나는 이 거리감이 아무리 커도 만족할 수가 없을 정도다.
142쪽

책을 읽지 않으면 읽지 않을수록, 넘기는 책장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독서를 향한 마음의 장벽이 높아진다. 
154쪽

그러면서 죽음은 삶에 너무나 가까이  닿아 있기에 우리가 소유한 것들과 매 순간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의 삶에선 이러한 의미의 죽음이 배제되어 있어 찾아보기 힘들다.
158쪽

한 인간이 그간 익숙해 있던 세상이 아닌 또 다른 낯선 세상을 만날 때에는 습관적으로 몸에 배어 있는 모든 익숙함을 버려야 그 세상으로 잦아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202쪽

그의 삶은 내가 이해할 수 없지만, 그의 생각은 묘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아마도, 그의 생각들의 끝에 다다른 결론이 혼자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즐겁지만, 동시에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심리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때로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고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욕구는 오베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과 끊임없이 부딪치고, 사랑하는 연인이 함께 하고자 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보편적인 생각에 따르면 "함께"있는 것이 당연한 상황에서 멀어지고 싶어 하는 그의 솔직한 고백은 조금 독특하게 느껴진다. 자신과 닮았지만 또 다른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을 피곤해하고, 미친 듯이 사랑했던 연인이었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멀어지게 되는 관계를 볼 때면, 관계가 살아 있음을 상기하게 된다. 

특히 오베와 린다의 이야기를 보며, 인간관계의 살아 움직이며 변화하는 순간들을 목격하였다. 그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표현은 그가 이전에 표현했던 생각과 전혀 다른 결을 가진 모습을 발견했다. 시니컬하고 차갑게 말하기 바빴던 오베가 린다를 생각하며"오, 나는 얼마나 그려를 사랑하는가. 그런데 왜 이리도 마음이 아픈 거지?"라는 말을 할 때 이질감을 느끼며 동시에 인간미가 느껴졌다. 

나는 그녀가 내게 어떤 사람인지 털어놓기 시작했다. 편지에 적어놓은 글 그대로. 그녀의 입술과 눈동자와 걷는 모습 그리고 그녀가 사용한 단어들. 나는 비록 그녀를 잘 알지 못하나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 그녀와 세상 끝까지 함께 있고 싶다는 것. 내가 원하는 건 그녀뿐이라는 것. _353쪽

그의 마음은 내가 약 1000쪽 가까이 읽었던 그의 삶의 이야기 중 가장 뜨겁고 열정적이었던 순간이었다. 홀로 사랑한다고, 자신만 좋아한다고 생각한 남자의 치열한 사랑의 고백은 그 마음이 커질수록 그 감정의 폭이 격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내 세상에 대한 불쾌함으로 가득했던 남자가 달라지는 과정이 말미에 쏟아져 나오는 것도 잠깐이었다. "난생처음으로 완벽한 행복감을 맛" 보았다는 고백 이후에 린다와 그의 관계는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한다. 틀어지지만 끊어지지 않은 관계는 다시 책 앞부분의 모습과 겹쳐지며 소설이 끝난다. 긴 호흡의 서사가 쏟아져 나왔지만, 결국 이야기의 마무리는 아쉬운 듯 끝이 나고 또 <나의 투쟁 3>을 기다리게 만들며 이야기는 끝난다. 

 

그의 고백의 한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나고 3권은 또 다른 서사의 시작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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