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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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뜨거운 여름 바다를 보았더라면

아쉬움을 달랠 겸.. 영국에서 바라본 대서양 사진이다.


엘레나 페란테의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든 생각이었다.
10대 후반부터 이어진 레누의 굴곡진 삶의 이야기를 지하철 안에서, 도심의 카페에서 읽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태양이 바다 지평선과 닿는 해질 무렵, 이탈리아 남부의 이름 모를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읽었다면, 뒤엉킬 대로 엉킨 그녀의 마음의 타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인생을 두고 계획을 세우곤 한다.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떤 '나'를 만들어갈지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만의 청사진을 만들곤 한다. 그 계획은 작게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질지부터, 학업 계획,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떤 사람과 사랑을 할지, 어떤 친구를 사귈지, 어떤 결혼을 할지 등 다양하다.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그 리스트를 체크하며 설렘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지 않은가. 
아무리 열심히 계획을 세워도, 아무리 머리로 생각해도 그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열심히 생각하고 계획한 일들이 때로 한순간 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이성적인 일에 사람의 감정이 끼어드는 순간, 그것은 머리로 하는 계획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고민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고민을 명료하고 이성적 방법으로 해결하기는 참 힘들다. 아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고민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서 레누가 경험한 일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믿었던 신랑에 대한 배신으로 끝난 결혼식 피로연, 신혼여행에서 '강간'당하는 신부, 가정 폭력, 혼외정사. 사랑하는 남자를 친구에게 빼앗긴 상실감과 반발심으로 그 남자의 아버지와 맺는 성관계 가출, 맞바람, 임신, 이혼...
-661쪽


옮긴이의 요약된 글처럼. 정말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건 사건 중심적인 요약으로, 이 요약은 소설의 핵심이 아니다. "친한 친구"라는 관계. 가족이라는 관계가 '나'의 자아 속에 침투해오며 생기는 고민들에 대해 풀어낸 이야기다. 그렇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누군가와 관계 맺기를 하고, 이미 맺은 관계를 끊기에 너무 가까이 살고, 너무 많은 시간을 공유했기에 멀어질 수 없는 존재가 '나(두 소녀)'의 삶에 침투해온다. 그리고 안타깝게 그 침투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두려움과 상처로 들어온다. 


남다른 천재성을 가지고 있던 소녀와 열등감을 두고서 천천히 배워나가는 소녀. 두 소녀는 상대방이 가지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비교하며 상대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을 할퀸다. 서로의 마음을 할퀴는 것에서 육체를 상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서 가장 아프고 공허감을 느끼는 존재는 어김없이 '나(레누 혹은 릴라)'다. (두 사람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다른 인물이 주인공이었다면, 다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두 사람의 생각이 관계 속에서 뒤틀려 고민을 낳았다고만 한다면, 소설로서는 무언가 아쉽다. 잘못된 결혼과 사랑하는 남자의 아버지와 성관계라는 자신의 삶에 후회할 일을 했다로 이 소설은 끝나지 않는다. 두 소녀의 고민의 결과로 발생한 후회할 일을 저마다 극복하는 과정을 담는다. 특히 레누는 '소설'을 통해 이를 돌아본다. 이는 마치 박완서 작가님의 "내 안의 언어사대주의 엿보기"라는 글을 떠올리게 했다. 자신의 치명적인 치부를 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내면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를 나의 입장에서 유리하게, 사건의 구성을 편집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리노를 사랑한 레누는 끊임없이 자신을 열등감에 휩싸이게 했지만 그럼에도 가장 믿었던 릴라에게 리노를 빼앗겼다는 사실과 그 사실에 충격을 받고 리노의 아버지 도나토 사라토레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글을 통해 고백한다. 숨길 수 있다면 죽을 때까지 숨기고 싶은 일을 드러낸다는 레누의 행동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한가지 방법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글을 쓴 레누의 감정을 따라가면,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부분들이 툭툭 마음에 박힌다. 1950년대 이탈리아 남부 도시의 이야기가 2017년 8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나의 마음에 말이다. 그들이 하는 행동을 내가 지금 하지 않지만, 그 행동 너머의 감정은 시간을 넘어 여전히 '나'도 느끼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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