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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ㅣ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정말 친한 친구이자 내가 가장 미워한 친구.
이 아이러니한 관계를 소설로 풀어냈다.
친구를 떠올르게 하는 소설
나의 눈부신 친구
나는 친구를 질투해본적 있다. 질투 뿐만 아니라 부러워한적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난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종종 부러워한다.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그냥 친구와 달리 내가 그 친구의 장점을 더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수많은 친구의 좋은 점, 닮고 싶은 점을 말이다. 특히, 내가 시간과 노력을 더 들인 것 같은데 친구가 더 좋은 성과, 결과를 가지게 되었을 때, 마음 속으로 허탈함과 함께 친구에 대한 질투심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 질투심을 입밖으로 쉽게 내뱉지는 못했다. 친한 친구에게 "난 네가 부러워."라는 말까지는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네가 더 좋을 수 있지."라는 어조의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다행인 점은 나의 경우에, 이 질투나 부러움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나의 눈부신 친구> 레누는 조금 다르다. 그녀의 가장 눈부신 우정은 질투가 불러온 감정과 뒤엉켜 있었다.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이자, 삶의 생동감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다. 그리고 이들은 이 복합한 관계를 '친구'라는 이름으로 포장했고, '우정'이라는 단어로 정의내렸다. 하지만 '친구'와 '우정'이라는 단어 속에 내포된 감정의 층위는 깊이도 넓이도 달랐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소설가 엘레나 페란테의 솔직한 감정 표현과 소설 속 상황 설정에 있었다.
레누는 마음 속 이야기는 읽는 이들로 하여금 지레짐작하게끔 만들지 않는다. 레누가 지금 마음이 얼마나 상했는지, 자존감이 약해졌는지, 진정으로 릴라를 좋아하는지, 릴라를 얼마나 의지했는지에 대해 거침없다. 반면 릴라의 감정은 이 소설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읽는 독자라면 알 수 있다. 릴라 역시 레누와 비슷하다. 릴라도 가정 형편상 할 수 없었던 것을 애써 덤덤하려고 하고, 레누를 가르치면서 때로는 자신이 느끼는 공허감을 채우려고 하고 있다. 레누는 보지 못했지만, 독자는 릴라 역시 레누가 느낀 감정을 릴라 역시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 소설은 어느 한 사람이 자신의 자존감을 세우지 못하고 친구에게 의존하는 류의 질투에 휩싸인 이야기가 아니다. 가장 친하지만 또 동시에 서로를 부러워하는 그리면서 자신의 결핍을 상대를 통해 확인하며, 한 발 더 나아간. 이 복잡한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이 설정의 배경을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이탈리아 남부 마을로 설정한 점이 흥미롭다. 패전국이었던 이탈리아의 상황은 세계 대전을 감당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었다. 문제는 패전으로 야기한 가난과 사회적 문제가 지역에 따라 다르게 일어났다. 특히 이탈리아 남부는 부유한 북부와 달리 더 전쟁의 상처가 깊이 자리하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는 남부 지역의 경제적 어려움을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이 어려운 경제 상황을 이끌어 나간 이가 "마피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환경 속에 두 소녀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게 나타난다. 개인적 동기와 사회적 영향이 섞어져 이야기가 보다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지금과 사뭇다른 환경의 이야기이지만, 레누와 릴라의 이야기는 여전히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공감을 불러온다. 그 상황과 여건이 다르지만, 느끼는 감정의 경험이 다른듯 닮은듯 공감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특히 "책"이라는 매개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점이 나의 공감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릴라를 보며 나도 모르게 떠오른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나보다 훨씬 책을 잘 읽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보지 못한 점을 발견하곤 했고, 이를 아무런 사심 없이 나에게 말해주곤 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될 수록 나는 레누가 그랬듯이 더 열심히 공부했고, 때로는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다. 나의 부러움은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와 내 친구가 좋아하는 분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이다. 즉, 내가 친구와 비교할 것이 없어지면서 질투심은 나와 친구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관계로 나아갔다.
릴라와 레누 역시 관심사 뿐만 아니라 삶의 환경 자체가 달라졌다. 고등교육을 받는 것과 일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으로 달라진다. 그리고 그 다른 길을 걷는 것은 파국으로 치닿는 듯 싶다가, 서로가 느꼈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을 불러온다. 즉, 애써 감추려고 했던 다층적 우정이 그 가리던 마음이 벗겨진다.
내가 초등학교 때 친해져, 자라면서 서로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친구와 난 지금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다. 이따금씩 만나지만 피상적인 이야기만 할 뿐, 어린 시절 비슷하게 경쟁심을 가졌던 때의 공유를 하지 못한다. 그 이유가 단지 이것만은 아니겠지만. 이 이유가 큰 것 같다. 우리는 레누와 릴라처럼 그때 느낀 질투를 결국 웃음으로, 우리가 생각한 우정이라는 좋은 감정을 포장해버려서가 아닐까. 우정의 다층적 면모를 인정해나가는 과정을 공유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왠지 모를 아쉬움 한조각을 남긴 책 한권이었다.
(하지만 이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만족함을 듬뿍 주었다.)
밑줄친 문장...
리노는 머리는 텅비어 있고 가슴은 자기 생각만으로 꽉 차 있으니까.
16쪽
"부탁인데, 한 번쯤은 네 어머니가 바라시는 대로 해주렴. 어머니를 찾지 말아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한 그대로다. 어머니를 찾아봤자 소용없을 테니 그만두고 이제 제발 혼자 사는 법을 배워. 이제 네게도 연락하지 않으면 좋겠구나."
17쪽
우리가 천천히 어린 시절 우리가 가장 두려워했던 대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공포의 대상에게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고 그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28쪽
릴라가 정말 알려고 했던 것은 '예전'의 기준이 되는 최초의 순간이 과연 존재했는지 하는 것이다.
39쪽
"릴라, 대체 누가 네게 글자를 가르쳐준 거지?"
자그마한 몸집에 짙은 색 머리와 눈동자, 그만큼이나 짙은 색 앞치마를 입고 목에는 분홍색 리본을 단, 기껏해야 6년의 세월을 살아온 릴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요."
48-49쪽
그의 침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복수에 마침표를 찍었다.
63쪽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릴라에게 무엇인가를 못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79쪽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러나 언젠가부터 생각이 바뀌어서 돈을 공부와 연결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책을 쓸 수 있고 책이 팔리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가 수많은 상자에 담긴 빛나는 금화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 보물 상자들이 있는 곳까지 자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책을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 함께 책을 쓰기로 하자."
언젠가 릴라가 내게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88쪽
릴라라면 온 세상이 머릿속에 말끔하게 정된되어 있고 그 때문에라도 우리 주위를 둘러싼 세상이 엉망이 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분 좋은 느낌에 나 자신을 맡기기로 했다.
95쪽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다. 마을은 마치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과거의 증오나 대립관계, 추악한 면으로 이뤄진 본연의 모습을 바꾸고 새로운 얼굴을 드러내려는 것처럼 형태를 바꾸고 있었다.
139쪽
나와 릴라의 근본적인 차이는 내게는 동생밖에 없어서 어머니의 영향에서 벗어나면 릴라에게는 누구에게서든 그녀를 보호해줄 수 있는 리노가 있어서 무슨 생각을 하든지 그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148쪽
세상은 이렇게 밝고 따뜻한데 어째서 우리 동네만 폭력과 긴장으로 가득 차 있는 걸까.
177쪽
릴라는 왜 항상 내가 해야 할 일을 나모다 빨리, 나보다 더 잘하는 걸까. 내가 따라가면 도망가면서 정작 자신은 언제나 내 뒤를 쫓아와 나보다 앞서나가려 하는 걸까.
182쪽
"사랑이 없으면 사람들의 인생만 황폐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삶도 황폐해지는 거야."
207쪽
"내가 오빠에게 행운은 길보퉁이에 있다고 믿게 했어."
234쪽
"이제 책을 빌리러 가지 않아. 책을 읽으면 머리가 아프거든."
나는 공부를 계속했다. 독서는 이제 즐거운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릴라가 나에 대해 신경을 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릴라가 공부에서나 독서에서나 학교에서나 페라로 선생님의 도서실에서 책을 빌릴 때 나보다 앞서나가려고 하지 않고부터는 책을 읽는다는 것치 예전처럼 신나는 모험이 아니라 그저 내가 잘하는 일이고, 이일로 칭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일 정도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244쪽
나는 릴라의 글솜씨에 또다시 수치심을 느꼈다. 그녀는 형상화할 수 있고 나는 그럴 수 없는 것 때문에 눈물이 앞을 흐렸다. 물론 학교에 다니지도 않고, 이제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지도 않는데 릴라가 그토록 뛰어나다는 사실은 나를 기쁘게 했다. 동시에 그 기쁨은 나를 불행하게 했고 나는 이런 감정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꼈다.
306쪽
나와 스테파노를 움직이는 방식을 보면 릴라는 자신을 가둔 새장에서 벗어나 자신조차도 모르는 자신의 참모습을 되찾으려 하는 것 같았다.
393쪽
"이제 다시는 네가 쓴 글을 읽고 싶지 않아."
"왜?"
그녀는 잠시 생각해 잠겼다.
"나를 아프게 하니까."
릴라는 이렇게 말하고는 손으로 이마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400-401쪽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녀를 정해진 길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도 매우 만족할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그녀를 창백한 얼굴에 말총머리를 하고, 맹금류 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싸구려 옷을 입은 과거의 릴라로 되돌리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녀에게서 동네의 재클린 케네디 같은 분위기를 걷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릴라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그것은 너무 비참한 일이었다.
413-4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