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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평점 :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은 마음에 구멍이 난 듯 허전하게 비어있는 쓸쓸함을 그림 그리듯 표현한다고 느끼게 한다. 《디 에센셜:다자이 오사무》에서 처음 그의 소설을 읽고 《만년》을 읽었다. 《만년》은 다자이 오사무가 쓴 첫 창작집으로 그가 자신의 소설 세계를 구축하기 전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직 이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태어났다"라는 책의 카피처럼, 글 사이사이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인간실격》의 어찌하지 못하는 고뇌하는 청년의 모습이 스쳤다.
"소설을 시시하다고는 생각지 않아. 내겐 그저 좀 미적지근할 뿐이야. 단 한 줄의 진실을 말하려고 100페이지의 분위기를 꾸미거든."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소설 속에서 자신이 전하고 싶은 바를 말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이 소설집이 자신의 유서가 될 것이라 확신했던 그는 청년기에 쓴 글을 엮은 이 책에 제목을 '만년'이라고 붙였다. 죽음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시절, 그는 단 한 줄로 어떻게든 설명하고 싶었던 것을 말하지 못해 소설로 적은 모양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중간마다 중얼거리듯 자기 생각을 소설에 녹인 다자이 오사무식 자기 고백은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의 어둑함과 때때로 그 어둠에서도 따뜻함을 느끼는 찰나와 같은 작은 포인트도 있다. 그는 매 순간이 고민과 고뇌의 연속이었던 모양이다. 허무하고 무용한 세상에 살아가는 자기 생각을 소설에 고스란히 담고 싶었던 그이기에 청년기를 반항으로 보지 않고 치밀한 자기탐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방황하는 자신에게 꾸밈없이 솔직했던 진솔함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는 밝고 활기찬 인물은 한 명도 없다. 어딘가 눅눅하고, 그늘진 이야기, 조금 비뚤어진 듯한 생각을 가지고 툭툭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추억으로 혹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고 조금의 꾸밈을 더할 수도 있는데, 흔들리고 나약한 자신을 드러낸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지만, 저마다의 깊은 마음속 그림자를 감추고서 살아가는 요즘의 우리에게 다자이 오사무식으로 건네는 위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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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고 있는 꽃잎이었다. 약간의 바람에도 파르르 떨었다. 타인으로부터 아무리 사소한 멸시를 받아도 죽을 듯이 괴로웠다. 나는 내가 머지않아 꼭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고, 영웅으로서 명예를 지켜 가령 어른이 얕보는 것조차 용서할 수 없었으므로, 이 낙제라는 불명예도 그만큼 치명적이었다. 그 후 나는 전전긍긍하면서 수업을 받았다. _46쪽
"그렇지 않아. 가지가 돋는 모양이 다르고 게다가 나뭇결에 반사되는 햇살도 희미하잖아. 하긴 싹이 나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_106쪽
여기서 끝맺을 수 있다면! 한물간 대가는 이쯤에서 의미 있게 끝맺는다. _172쪽
어떻게든 된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하루하루를 맞이해 그대로 보내면서 지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무리 애써도, 도저히 어떻게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처지가 되면, 나는 실 끊어진 종이 연처럼 둥실둥실 고향 집으로 바람에 날려 돌아온다. _ 292쪽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