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 키린의 말 - 마음을 주고받은 명배우와 명감독의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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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신과 보내는 시간이 당연히 그 자체로 몹시 즐거웠지만, 아무래도 저는 인생 어딘가에서 친어머니와 보내지 못했던 아들로서의 시간과 후회를 어떻게든 만회하고 싶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이루지 못할 소망을 키린 씨와 함께 지내며 이뤄보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말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그런 저의 마음은 관찰안이 날카로운 키린 씨이니만큼 처음부터 꿰뚫어 보셨겠지요. 키린 씨에게 어머니를 투영하며 영화를 찍고, 키린 씨와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저는 제 어머니에 대한 애도 작업을 조금씩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작업 도중에 저는 또 한 명의 어머니를 잃고 다시 애도 작업을 시작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_ 334쪽

《키키 키린의 말》을 읽었지만, 내가 읽은 것이 그녀의 말인지 그녀의 말을 옮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먹먹함인지 알 수 없었다. 이 감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책의 끝부분에 실려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추도문 때문이었다. 그의 추도문이 이전의 책의 감상을 완전히 바꾸었다. 처음에 글을 읽을 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글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키키 키린의 인터뷰 글이 모두 끝나고, 그의 추도문을 읽는 순간 앞선 인터뷰가 새로이 재편집되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글을 읽게끔 했다.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이 있으면 기록해둔다. 《키키 키린의 말》를 구매할 때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단순하지만 명쾌한 키키 키린의 말이 이따금 어떤 고민에 빠질 때마다 꺼내 보고 싶은 구절로 다가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오래도록 담아두고 싶은 문장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대신 어머니를 애도하는 법을 배우게끔 만든 어머니를 잃고 애도하는 과정을 거친 한 자식이 마음을 열고 또 닫아두고 다시 열기를 반복한 흔적을 찾았다. 인터뷰를 글로 옮기고, 인터뷰 마지막마다 이어진 글은 언제든 통할 수 있었던 마음을 서랍에 넣어 닫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애도'를 본다는 건. 여러 생각을 부른다. 나에게 그런 사람이 누구인지를 떠올리게 만들고, 이 책과 같이 구체적인 대상이 있을 때는 영화에서 바라보았던 배우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가 하면, 가능하다면 아주 먼 훗날 마주 하고 싶은 비슷한 감정이 스며들 때 슬쩍 꺼내 봐야겠단 생각을 하고, 행복하고 감사한 풍경이 슬픔이란 감정에 비치면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 《키키 키린의 말》은 그런 책이었다. 앞으로 시간에서 쌓을 수 없는 풍경 대신 지나온 풍경을 추억으로 되짚을 수만 있는 아쉬움과 애틋함이 먹먹하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책을 읽고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그 숨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간 사람을 기억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내일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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