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영원했다
정지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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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증언이다. 남아 있는 자료는 아주 적고 그마저도 건조하고 불투명하다. 나는 가능한 한 가까운 거리의 자료를 토대로 정웰링턴의 삶과 감정, 생각에 대해 상상했고 이야기를 덧붙였다. 나는 무엇도 추리하지 않았다. 진실을 밝히거나 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진실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밝혀진 진실 속에서 그들은 역사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_ 134쪽

읽고 나서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시 살펴보아도 잘 모르겠다. 당연하다. 정웰링턴의 삶을 조금 검색해보니, 이해하기가 왜 어려웠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이지 당연했다. 여기서 정웰링턴은 중국과 미국에서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펼친 현앨리스의 아들이다. 그는 하와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펼치다 체코로 넘어가 의학을 배워 의사가 된다. 결혼하고 잘 사는 듯싶었으나 불과 서른여섯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모든 것은 영원했다》는 정웰링턴이 체코로 넘어온 후 생각을 소설가 정지돈이 기록과 자신의 상상을 더해 엮은 소설이다.

모든 곳에서 모든 순간에 동시 접속하고 이동할 수 있는 책. 나는 하나의 글에서 동시 접속하고 이동할 수 있는 책. 나는 하나의 글에서 곧장 다른 글로 넘어갈 수 있고 그것들의 상호 연결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적 형식을 만들고 싶다. 여러 생각의 끊임없는 교체야말로 사유의 결정적인 특징이라고 헤겔은 말했다. _ 149쪽

물음표를 모르겠다는 것으로 바꾸고 나니 한결 책이 가벼워졌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만을 생각하며 외곬으로 치닫던 생각을 느슨하게 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하다. 무슨 의미를 찾아내야만 그 소설의 가치를 발견하는 건 아니다. 의미없음이 전부인 것도 있다. 정웰링턴은 무엇을 뜻하고 의미하는지가 전부인 시대를 살았다. 각종 -이즘과 -주의로 표상한 의미가 몹시 중요하던 때, 그 수면 아래에 함의는 의미 없음으로 치부되던 때였다. 정웰링턴은 의미 없는 것에 부여한 것을 사유했고 그 모든 것이 그를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 생각을 그가 놓았다면, 어렵게만 느껴지던 삶이 한결 가벼워지지 않았을까. (당연히 그럴 수 없겠지만 그런데도 난)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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