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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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았다. 잔잔한 독립 영화 한 편을 읽은 것만 같았다. 서른 여섯 살의 수진과 그녀보다 여덟 살 많은 혁범과 그녀보다 여덟 살 어린 한솔. 세 사람의 관계는 정말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한 느낌이었다.

'나'보다 '너'를 연민하는 마음.

'나'보다 '너'가 마음이 아프거나 상처 입을 것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

'너'가 '나'의 마음에 보답해주지 못한다 해도 기꺼이 먼저 '나'를 내어주는 마음.

'나'의 가혹함을 덜어내고 '너'의 취약함과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마음.

아마도 그런 마음들이 다름 아닌 사랑의 감정일 것이다.

_ 작가의 말 중에..

소설을 읽으며 난 어딘가 덜그럭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 수진의 마음이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마감이 매끄럽지 않은 사기그릇과 그 뚜껑의 합을 천천히 맞추어가는 느낌이었다. 묵직한 도자기를 천천히 돌려 그릇의 합이 딱 맞는 순간을 맞추어가는 듯한 느낌. 조금은 거친 도자기의 질감이 움직이는 동안 깎아지고 맞춰져서 어느 순간 덜그럭 맞아들어가는 듯한 과정이 보였다. 사랑하는 건 여간 쉽지 않고, 받기도 쉽지 않아 어디에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수진이 마음을 놓을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난 수진이 누구와도 이루어지지 않길 바랐다. 모두 수진에게 맞지 않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수진이 혼자 자신을 좀 더 끌어안는 시간을 가지길 바랐다. 정말 그랬다.

그러나 미움은 사랑의 모습을 닮아 있기도 했다.

애초에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은 첫순간에 이미 사랑하는 역할과 사랑받는 역할로 정해져버리는 것을까. _ 83쪽

혁범의 사랑은 수진에게 서운함과 충만하지 않은 느낌을 주었다. 사랑하지만 외롭다고 느끼는 불안함을 주는 사람이었다. 한솔의 사랑은 수진에게 벅참과 당혹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사랑을 받을수록 부담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둘 다 그녀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좋은 사람과 만나면 좋지만, 역시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오면 모두가 말리고 머리로 안 된다 생각해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래서 나도 (굳이 선택해야 했다면) 혁범이었을 것이다.

한솔은 내내 부담스러웠다. 그의 사랑은 받는 것에서 하는 것으로 넘어가 지지 않고, 받을 때마다 고맙기보다 미안하단 생각이 자꾸만 드는 사람이었다. (낯설지 않았다. 그의 모습)

그의 더할 남위 없던 진심을, 완벽한 모양을 한 그 사랑을. 그리고 어쩌면 그래서 두려워했던 자기 자신을 _ 213쪽

내가 느낀 한솔은 쉽게 이해받는 사람보다 오해를 받아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수진을 좋아하는 감정에 지나칠 만큼 솔직해서 그의 편지와 행동과 말에 쉽게 이해란 말을 붙일 수 없었다. 그래서 오해하기도 쉬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을 만큼 한솔은 수진을 좋아했고, 오해를 받아도 괜찮았던 모양이다. 작은 바람을 가지자면 한솔이에게도 그의 마음에 잘 맞아들어가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난 누군가에게 쏟은 사랑이 그 사람에게 닿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언젠가 다시 쏟은 이에게 돌아온다고 믿는다. 소설에서 "더할 나위 없던 진심을, 완벽한 모양을 한 사랑"을 한솔은 당연히 그런 사랑을 받을만한 인물이었다.

(여담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앞에 서면, 우리는 늘 조금씩 긴장하는 것 같다. 행여 그가 부서지기라도 할 것처럼 조심조심, 부드럽고 사려 깊게 말을 건네려고 애쓴다"라는 작가의 말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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