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문학동네 시인선 135
이원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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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눈으로 읽었다. '흠, 어렵군. 소심한 사람의 짝사랑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분투기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몇 편씩 잠들기 전에 주말에 방안을 뒹굴 거리며 가만가만 소리 내 읽었고, 또 갸웃거리다 또 덮었다. 그렇게 책장에 들어갈 뻔했던 시집이 내 손에 붙잡혀 두 눈에 닿게 되었다. 제주도행 비행기 표를 취소한 밤이었다. 기다렸던 여행에 대한 설레던 마음을 기약 없는 미래로 두고, 제주에 관한 책이 궁금해서 시집을 들었다.

여전히 아직도 어렵다, 시는. 시집이 어려운 이유는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왜 이렇게 하는지 그 조심스러운 머뭇거림이 바뀌는 섬세함을 내가 잘 몰라서였다. 중얼중얼 이야기하는 소리에 '응? 뭐라고?'라고 물어보면, 배시시 웃으며 '아니야'라고 말하고 다른 곳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엔 그 감정상태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달라진다. 무언가 달라지기로 마음을 먹은 것만 같은 표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쓸쓸해도 이 섬에 버티는 이유는
동백꽃 필 때 마침 얼굴이 빨갛기도 할뿐더러
섬에서 살 수 없다면 배 위에서라도 살고 싶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내가 나를 기다리다 내가 오면 다시 나를 보낼 것 같아>중에

그런 순간이 있다. 한 감정에 푹 빠져들고 싶은 순간. 그 감정이 남긴 것을 세밀하게 하나 하나 살펴보며 그 감정에만 젖어들고 싶은 순간. 행복한 순간보다는 약간 우울한 그런 감정이 사색을 부른다. 생각해보면 행복한 순간은 약해서 잘 깨지곤 하는데. 우울함이나 슬픈 감정은 어쩌다 단단한지 좀처럼 벗어나기가 쉽지가 않다. 자꾸만 뒤로 깊은 이가, 자신의 감정을 시를 빌려 슬그머니 내놓아서 좋았다. 그렇게 3년의 세월과 다른 시간을 맞이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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