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고 있잖아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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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해 주면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누군가 한 손을 내밀어 주면 두 손을 내밀고, 껴안아 주면 스스스 녹아 버리는 눈사람이다. _ 7쪽
과거의 난 그랬다. 잘해주기만 하면 돌멩이도 사랑하는 바보였지. _ 9쪽
뒤 문장이 치트키였다.

"하지만 열네 살이 된 지금은 다르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는 말을 더듬는 소년이 보낸 현실이자, 일기이며, 어쩌면 마음속 이야기다. 언어 교정원에 다니며 언어적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 중에 벌어지는 일에 대한 생각은 머리를 가득 채우지만, 말로 전하지 못하는 소년은 꾹꾹 마음에 담아둔다.

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자라기 위해선 정서적 안정이 필요하다. 사랑이 부족한 아이였다. 채워져야 할 사랑이 채워지지 못한 아이는 누군가의 작은 마음이 쉬이 움직였다. 호의와 사랑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랑의 따뜻함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지는 못하고 자꾸만 상처받는 인생의 불공평함이 소년에게만 더 기울어져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까웠다.

엄마의 방임과 집착 사이의 폭력적 사랑과 엄마 애인의 신체 언어적 학대로 불안해지길 때마다 기댈 수 있었던 작은 틈이 있어 난 안도했다. 소년의 인생에 가혹하고 또 가혹한 일만 계속 벌어지지 않았다. 버거운 삶을 해결해주는 키다리 아저씨는 없었지만, 그 버거운 삶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

하루하루가 벅찬 소년의 눈에 세상은 아주 조금씩 점점 괜찮아졌다. 내 말을 귀담아들어 줄 틈 없이 바쁘고 분주한 세상은 소년에게 더 불공평했고 불안하게만 했는데도. 그런 세상이 괜찮아진 이유는 내 이야기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말하려는 소년이 찾은 다른 풍경 덕분이었다. 그 기록 덕분에 내가 본 세상도 조금은 몽글몽글한 빛을 낼 것만 같았다.

사랑받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 있다. 그저 존재만으로 사랑을 아낌없이 받아 마땅한 시절. 사랑을 받았을 때 보이는 삶의 안온함을 만끽해야 하는 시절. 그런 시절을 불안과 폭력으로 지나온 소년의 기록은 참 덤덤했다. 매일매일 노트에 꾹꾹 마음을 누르며 자신만의 평온함을 찾는 과정은 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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