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12
케네스 그레이엄 지음, 정지현 옮김, 천은실 그림 / 인디고(글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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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연 속에서 살다 보면 가혹한 일도 많으리라.

그래도 눈 앞에 펼쳐진 그 공간 속으로 지혜롭게 따라갈 것이다.

평생 즐거운 모험이 가득한 그곳으로.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참 인상적이었다. 묘사가 인상적이라 좋았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숲 속 풍경이 그려지는 것만 같았고, 동물 친구들이 내는 소리와 듣는 소리 그리고 움직임이 그려져서 신기했다. 이따금 내 머릿속으로 그려진 풍경보다 더 동화 같고 아름다운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의 삽화를 보는 즐거움도 꽤 컸다. 이 소설은 시력이 약한 아들을 위해 저자가 직접 지은 동화라고 한다. 간단하고 단순한 서술로도 진행할 수 있는 이야기에 저자가 더한 자세한 묘사는 아들에 대한 깊은 사랑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해보고 싶다는 충동에 지곤 하는 두더지는 모험을 시작하고, 자신을 찾아오는 두더지를 반갑게 반기는 들쥐, 조금 재수 없는 두꺼비, 지혜로운 오소리. 의인화한 동물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여름밤 머리맡에서 누군가 읽어줬으면 하는 따뜻한 이야기였다. 그다음엔 어떤 일이 펼쳐질지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야기는 사계절 중 유난히 짧은 여름밤에 딱 어울렸다. 소설 속 배경이 추위가 스미는 겨울이 아닌 장대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햇볕이 쨍쨍하기도 한 변화무쌍한 여름을 닮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되돌아봤을 때 '그랬더라면 좋았을 텐데.'하고 바라는 일들이야말로 가장 짜릿하고 신나는 모험이다. 그런데 위는 어째서 그런 모험이 드문 걸까? 사실로 보기엔 좀 부족한 희망 사항일지라도 어쩌면 그것은 훗날 진짜 모험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_ 289쪽


처음에는 왜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두더지, 두꺼비, 오소리, 물쥐. 각각 한 명 한 명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면 더 매력적이었을 텐데. 아니면, 읽는 독자가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보라는 작가의 숨은 의도였을까.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소설 시리즈 <나니아 연대기>가 생각났다. 오소리와 물쥐는 소설에서도 등장할 것만 같은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인물들이 집을 떠나 멀리멀리 여행을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읽으며, 조금은 자란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동물을 꼽으라면, 난 두꺼비였다. 가장 괜찮아 보이는 건 오소리였지만, 역시 어딘가 얄미운 구석이 있지만, 그런데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에게 애정이 더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듯싶다. 빅토리아 시대를 지나, 영국이란 국경을 넘어 지금까지 이 이야기가 사랑받는 걸 보면, 어른이 되어도 자라지 않은 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어린 구석을 매만져주는 그런 마력이 있어서가 아닐까. 내가 두꺼비가 기억에 남았던 이유를 돌아보면 나와 닮은 면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다 너를 위해서야, 두꺼비. 너도 이제는 새롭게 변해야만 한다는 걸 잘 알잖아. 지금이 그 시작을 위한 좋은 기회야. 네 인생이 바뀔 시기라고. 이런 말을 하는 나도 너만큼이나 마음이 아프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출판사 별로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모았던 소설 주인공 은섭이 진짜로 있다면, 그의 서가 한쪽에 하늘색 이 책도 놓여 있지 않을까. 왠지 여름 하늘을 닮은 이 책이 가장 빛나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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