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산 -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 아무튼 시리즈 29
장보영 지음 / 코난북스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기심에 우리나라 취미 모임에 뭐가 있는지 열심히 찾아보았던 적이 있다. 독서라고 믿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고 "낚시"와 "등산"이었다. 아웃도어 브랜드가 많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여중 여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가파른 언덕이란 입지 조건을 피하지 못하고,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곳을 다닌 나에게 산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런 내가 《아무튼 산》을 사다니. 귀여운 건 옳다는 굳은 믿음. 그리고 부제 때문이었다.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

힘든 건 요리조리 피하는 사람도 있지만, 피할 수 있어도 굳이 그 힘든 걸 하고야 마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힘든 걸 피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이해하기 힘들고 어려운 책을 낑낑거리며 읽고 난 뒤에 내 마음에 번지는 행복을 주기적으로 찾는 것도 여기에 있다. 부제를 읽고. "나도 아는데, 힘들어서 좋다는 걸." 이렇게 말했다.

스물일곱, 서른은 아직 아니었지만 청춘의 달뜬 호기로부터는 한 걸음 멀어진 시간에 나는 또 다짐했다. 행복하자고. 어제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의 마음을 알았으니, 더는 모른 척하지 말자고. 하루라도 일찍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자고. _ 34쪽

《아무튼 산》은 색다른 아무튼 시리즈였다. 내가 지금까지 읽음 아무튼 시리즈는 단편 단편 글마다 개성이 전해지는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글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래서 꼭 처음부터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글도 윤이 나고 단단했다. 마치 그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바위에 닿아 마모된 돌 같았다. 아니, 길이 아니었던 곳을 지나간 사람의 발걸음에 단단하게 다져진 등산로 같았다.

멀어지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가만히 두면 저절로 멀어졌다. 무거운 중력과 무서운 습관 속에서 나는 내가 원한 대로, 나에게 전부였던 산에서 놓여나고 있었다.
_126쪽

산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켜켜이 쌓아 만든 글엔, 산과 함께 하며 삶을 더 사랑하게 된 사람이 있었다. 그 글을 읽다 보면, 나는 이렇게나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뜨겁게 사랑하기도 하고, 때론 미적지근하게 식기도 했던.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온도를 찾았던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나에겐 그것이 책이었다. 저자가 더는 타지 않는 2200번 버스에 행복하게 올라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걸 보면.

세상에 수많은 산이 있는 것처럼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배경과 목적과 이유도 저마다 다르다. 이른 나이에 산을 만난 사람이 있으면 늦은 나이에 산을 만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가 산에서 인생의 전성기를 맞았다면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에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게 됐을 때 산으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정해진 답안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는 차음 산을 향한 세상의 모든 대답과 만나고 싶어졌다. 산을 배우고 싶었다. _46쪽

나도 언젠가 산을 배우고 싶어지는 순간이 올까. 확실한 건 지금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