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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무루(박서영)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평점 :
어렸을 때 난 그림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답고 싶지 않아, 그림책을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어린도 아이도 어울리지 않아지기 시작했을 때 그림책이 궁금해졌다. 텍스트로 상상할 수 없는 그림책이 주는 포근함을 발견한 건, 내 상상이 더는 사랑스러움으로 치닫지 못하면서부터였다. 동화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그림책을 수집하는 사람의 심정을. 자꾸만 낙담하게 만드는 인생의 돌부리에 걸려도 긍정하는 힘을 주는 책이어서가 아닐까 짐작해보며 나도 그림책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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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에게 준 사랑은 세상을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온다고 했다. 많은 것들이 그렇게 먼 길을 돌고 돌아온다고 나는 믿는다. 어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자신이 세상에 던져놓은 마음을 끝내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는 마음을 선물처럼 받을 수도 있다. 많은 좋은 것들이 먼 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온다. 그것들은 나를 통과해 또다시 먼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_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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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난 이상하고, 이미 난 자유롭다. 이제 할머니 될 일이남은 것 같은 내가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읽은 이유는 두 번째 목차 때문이었다.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같은 이름의 그림책이 좋아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한 적이 있던 나에게 넌지시 말하는 것만 같았다. "망설인 끝에 있는 너에게"라고. 그렇게 난 골랐고 샀고 읽었다. 그리고 나의 선택은 옳았다.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와 《오리건의 여행》을 페어로 쓴 글을 보고, 아주 마음이 찌릿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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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건 작가의 세계 위에 내 세계를 겹쳐보는 일이다. 어떤 이야기도 읽는 이의 세계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내가 읽은 모든 이야기는 언제나 그때의 나만믘만 읽혔다. 그래서 하나의 이야기는 동시에 읽는 수만큼의 이야기다. 한 사람이 지나는 삶의 시기마다 같은 이야기도 다르게 읽힌다. 좋은 이야기일수록 더욱 그렇다. _174-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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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이 읽어주던 동화를 들을 때처럼, '내일'이 '오늘'이 된 순간이 낯선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어찌나 스스로가 어리숙하고 서툰지, 모든 일에 실수가 참 잦다. 당장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꿀팁이 간절하지만, 요령보다 두루뭉술하지만 포근한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런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 그림책과 삶을 겹쳐놓고 풀어낸 이야기엔 모두가 다 아는 평범하고 단순한 그래서 썩 괜찮은 가치가 담겨 있었다.
(대개 그런 가치는 요령 피우는 삶에서 얻을 수 없는 의연함이 있는 법이다.그래서 참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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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1. 이 글처럼 서평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림책과 삶을 자연스럽게 녹이는 글을.
추신2. 책에 담긴 그림책의 표지이미지 정도는 책의 마지막에 담아주었으면 어땠을까. 그림책의 표지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