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여름 -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아무튼 시리즈 30
김신회 지음 / 제철소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여름만 되면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 하는 나, 왠지 모르게 근사해 보이는 나, 온갖 고민과 불안 따위는 저 멀리 치워두고 그 계절만큼 반짝이고 생기 넘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한다고 자신했는데, 『아무튼, 여름』을 읽으며 자신할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알고 보니 난 여름 덕후였다. 여름은 나에게 겨울과 달리 시골 할머니 댁에서 합법적 장기 거주가 가능한 계절이었다. (겨울엔 설에 잠깐 갔다가, 새 학년 준비로 바빴다.) 덕분에 옅어져서 잘 보이지 않는 내 몸에 크고 작은 흉터는 죄다 여름에 만들어졌다. 풀숲을 뒹굴다가 풀독에 오르고, 계곡에서는 흉터를 만들고 돌아왔으며, 사과나무에 올라가려다 떨어지고, 온갖 벌레에 몸을 기꺼이 내주었으며, 큰 강에서 떠내려가 구급차 신세를 2번이나 겪었던 파란만장한 사건이 일어난 계절은 모두 여름이었다. 그렇게 매년 다쳤으면서도 여름이 돌아오면 과거보다 더 큰 스케일의 사고를 쳤던 나의 호기심과 패기는 여름에 자라나는 잡초처럼 무성했다. (어쩌다 지금은 호기심 반 걱정 반 어른이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좋아하는 계절을 닮은 사람과 좋아하는 계절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동안 혼자로도 충분했던 여름의 순간들이 한 사람으로 인해 다른 색깔을 덧입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는 것처럼 이 사랑도 끝이 날 거여. 난 다시 혼자가 되고 싶어 할 거야."

여름에 시작한 사랑이란 이야기에 영화 <귀를 기울이면>이 생각났고,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떠올랐다. 나도 은연중에 여름에 시작하는 풋풋한 사랑을 기대했던 적도 있었단 생각에 피식 웃었다. 그외에 작가의 여름 사랑은 곳곳에 닿아 있다. 초당 옥수수에 닿았을 때, 홀린 듯 초당옥수수를 택배로 결제했고, 평양냉면이 맛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는 난 옥천 냉면 부분에서 올여름 꼭 먹어볼 음식 리스트를 하나 추가했다. 수입 맥주 4캔이 주는 즐거움, 책을 안주 삼는 패기, 레몬소주 찬양론, 낮술에 이르는 술. 술. 술 에피소드에 『아무튼, 여름』 속에 『아무튼, 술』이 외전으로 담아 있는 줄 알았다.

여름에 반짝반짝 빛나던 추억을 꺼내볼 수 있는 에세이였다. 진지함보다 유쾌한 이 글은 시원한 에이드(누군가에겐 맥주)를 닮았다. 해가 길고 길어진 덕분에 하루에 보너스 몇 시간을 더 얻은 것만 같은 이 계절에 책 속 이야기를 열쇠 삼아 내 여름날 추억을 꺼내 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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