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 인 타임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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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늠할 수 없는 슬픔을 다룬 책을 읽은 이유는 기억해야만 하는 어느 봄날을 위해서였다. 이언 매큐언의 《차일드 인 타임》은 딸을 잃은 한 남자가 나온다. 눈앞에서 자신보다 더 소중하다 생각한 딸을 잃어버린다. 상실.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이 마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어떤 것일까. 이언 매큐언은 오늘이 지나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는 시간의 흐름을 놓친, 순간순간 기억이 '현재', '오늘'로 수렴하는 한 남자의 삶으로 보여주었다.

갑자기 그들의 슬픔은 개별적이고 배타적이고 소통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걸었다. _40쪽

딸 케이트를 잃고 스티븐과 줄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상실이 짓누르는 삶을 살아낸다. "상실의 경험을 통해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길로 들어섰다. 함께 나눌 것이 없었다."라는 말처럼. 이겨낼 수 없는 슬픔의 중심에 파고드는 것과 슬픔의 가장자리를 맴도는 것. 참 다른 방법으로 말이다. 딸이 어딘가에 살아있다면, 살아있을 것이란 희망은 살아있게 하였지만, 사는 것이 아닌 삶이었다. 그 생각은 스티븐의 현재를 다른 순간으로 보냈고 지금이 아닌 그때가 그에겐 지금이 되었다.

숨을 멎는 듯한 극한의 슬픔과 더불어 사는 삶은 차가웠다. 차가운 아픔을 파고드는 건 행복한 기억이었다. 소설의 초반, 아이를 잃기 직전의 기억이 인상적이었다. 스티븐이 얼마나 곱씹고 복기했는지 그 기억은 세밀하고 정교한 그림 같았기 때문이다. 시간이란 흐름에 씻겨져 내려갈까 봐, 자꾸만 지금의 좌표에 놓았던 첫 기억이 줄리와 케이트와 보낸 평범했던 어느 아침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시간은 케이트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잃어버렸을 기억이었다.

사람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어쩌면 자신도 자식을 낳고 나서야, 부모에게도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완전하고 복잡다단한 삶이 있었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_86쪽

작가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 아버지를 잃었을 때, 줄리와 케이트랑 함께했던 순간들. 그의 기억이 부른 수많은 '지금'을 읽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이언 매큐언의 문장이 만든 기억이 생생해서 자연스러웠을 뿐이었다. 읽다가 나도 몇 번이나 그와 함께 이야기의 흐름을 놓쳤다. 그러고 나서야 알았다. 시작과 끝이 의미 없는 소설이란 걸. 자녀를 잃은 부모의 삶이란 흐르는 시간에 자신을 맡기는 것조차 버거운 것이란 걸. 케이트를 잃은 후, 소설 속 모든 순간은 '현재'이지만 무의미하단 걸.

갈 곳이 없다는 것, 몸이 있는 형태로는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 그의 도착을 기대하는 이는 없으며, 목적지나 시간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 격렬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에도 그는 꼼짝하지 못한 채로 고정된 한 점을 빙빙 돌고 있었으니까. 이런 생각과 함께 자신의 것이 아닌 슬픔이 쏟아져 나왔다. _111쪽

그리고 나서야, 나는 스티븐이 소설의 끝에 도착한 기억이 얼마나 기쁘며 아픈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소설이었고, 읽고 난 후에도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읽는 이유는, 나의 기대와 예상을 뛰어넘는 여운을 주기 때문이다. 《속죄》, 《체실비치에서》에 이어서. 이 작품에서도 상실, 상처로 개인의 삶이 어떻게 굴절될 수 있는지 그는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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