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 기술 빅뱅이 뒤바꿀 일의 표준과 기회
대니얼 서스킨드 지음, 김정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대니얼 서스킨드의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는 미래는 더 이상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경제적 풍요를 얻는 시대"의 종말을 주장한다. 그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21세기 초까지 지탱해온 노동의 가치가 재배치될 것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한다. 4차 산업혁명 이후로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것을 넘어, 오랜 시간 우리 삶을 지탱해온 노동과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 경제 체제 자체의 변동을 예견한다. 당연하게 여긴 노동을 하고 그 결과 재화를 얻는 기본적인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대니얼 서스킨드는 단호하게, "종말"을 선언한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난 제임스 퍼거슨의 《분배 정치의 시대》에서 기본소득과 국가의 역할을 중심으로 예측한 미래 모습과 흡사한 부분이 많은 듯 싶어 특히 흥미로웠다.

인공지능에서 일어난 실용주의 혁명은 인간이 만든 기계의 능력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를 자연선택처럼 뒤집어 생각하라고 요구한다. 오늘날 성능이 가장 뛰어난 시스템은 지능이 뛰어난 인간이 하향식으로 설계한 것이 아니다. 사실 다윈이 100년 전 발견한 대로 인간의 지능을 전혀 닮지 않은, 앞을 보지 못하는 의식 없는 상향식 과정에서 비범한 능력이 서서히 생겨날 수 있다. _ 85쪽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기술과 일의 역사로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일의 위기를 말한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사라져가고 앞으로 인공지능 기계로 대체될 것임을 주장한다. 그런 미래에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얼마나 대체할 것인가, 인간에게 위협이 될 것인지보다 다시금 우리의 삶에 일이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었다. 특히 "사람이 수행할 때는 공감, 판단, 창의성이 필요한 과제를 기계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그것이 당장은 낯설 수 있어도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할 가능성도 함께 존재한다는 점을 말한 부분은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지 않아 더 궁금했다.

2부는 위협은 인간의 노동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말한다. 시작은 인간이 수행하고 있는 업무가 기계에 의해서 대체되는 것 부터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무인화' 시스템이 좀 더 우리 삶에 보편화될 것이다. 물론 이 대체가 국가가 가진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한때 인간만이 할 수 있었던 업무 영역을 어느 때보다 깊이 그리고 서서히" 대체할 기계가 이미 존재하며,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예정이다. 인간이 수행하고 있는 노동이 기계로 대체된다면 그다음에 발생하는 문제는 바로 '실업'이다. 그리고 그 실업은 가난한 사람을 더욱 힘들게, 부유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덜 힘들게 만든다는 점이다. 저고용 저성장 시대가 오랜 시간 지속되어왔고 그 상황을 반전시킬 고용의 폭발을 촉진할 기술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저자의 예견대로 될 미래가 우리의 미래일 것이다.

불평등 연구를 이끄는 저명한 학자들의 말대로, "최근 몇십 년 동안 거의 세계 모든 지역에서 소득 불평등이 커졌지만, 속도는 달랐다. 발전 수준이 비슷한 국가들 사이에서도 불평등 수준이 무척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불평등을 형성하는 데 국가 정책과 제도가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뚜렷이 드러낸다."_205쪽

노동과 돈, 시장 등 기존의 경제 질서가 가진 통념과 반대로 기본소득,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 저자의 의견을 읽으며 퍼거슨의 《분배 정치의 시대》의 내용을 많이 떠올렸다. 개인적으로 3부의 대응은 날카로운 분석에 비해 아쉬웠다. 문제 제기와 현황 분석만큼이나 참신하고 새로운 발상이 아닌, 어딘가에서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우리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의 영역을 광범위하게 정의 내린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본 소득 시스템을 좁은 의미로 바라본 노동시장에서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았던 노동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풀어간다는 점은 '기본 소득'과 '분배 정치' 문제에서 많은 저항을 받는 지점을 고려한 부분이었다. 퍼거슨은 국민의 권리적 측면에서 기본 소득을 풀었으나, 저자는 경제 시스템 안에서 풀어간다는 점에서 비교하며 읽으면 더 의미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국가적 대응, 다국적 기업과 거대 IT기업에 대한 분석을 한 후에 개개인에게 일의 의미가 바뀌고 삶 전체가 바뀌어 갈 것으로 예견하며 책은 끝난다. 제임스 퍼거슨 내한 강연을 듣고, 그의 책을 읽은지도 3년이 지났다.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아쉬웠다. 노동과 복지 시스템의 변화를 주장한 퍼거슨의 맥라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경제학자의 시선에서 분석했기에 새로운 인사이트를 많이 얻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에게 일이 삶의 의미를 얻는 원천인 까닭은, 일 자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인생 대부분을 일에 쏟아붓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하는 일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만약 인생을 마음껏 다르게 보낼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대로라면, 나는 어떤 곳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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