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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The Power
나오미 앨더만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0년 2월
평점 :
그런 세상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긴즈버그가 말했던 미국의 대법관이 모두 여성인 것이 당연한 세상. 한 발짝 더 나아가 세상의 권력이 모두 여성이 가지고 있는 세상. 지금의 세상이 그렇게 바뀌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떠올려본 소설이 나왔다. 바로, 《파워》다. 여기까지 설명을 보면, 이 소설에 대한 한가지 프레임이 씌워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선입견을 품고 지나치기보다 한 번쯤 읽었으면 좋겠다.
《파워》는 전기를 내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녀들이 등장하면서 시작한다. 특정한 한 소녀가 아니라,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전기를 내보낼 수 있게 된다. 잠재되어 있던 전기를 사용하는 능력을 어린아이부터 성인 여성까지 일깨우기 시작하면서 세상은 바뀐다. 여성 공화국부터, 이브교, 정치적 권력을 두고 다투는 일까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층위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역동적이며 때때로 잔혹하다.
두려워하지 말자. 무사할 방법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뿐이야. 하지만 그의 동물적인 본능은 이미 두려워하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믿음이 하나 있다. 사냥꾼이 되거나 사냥감이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자신이 어느 쪽인지 알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라. 거기에 목숨이 걸렸다. _ 333-334쪽
"여자들에게 다가가 이제 새로운 삶의 방식이 있다고 말해 주고 싶어. 남자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살게 두고, 여자들이 다 함께 힘을 모아서 기존 질서를 지킬 필요 없이 새로운 길을 만들면 된다."면 주인공들은 어떤 딜레마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선을 긋고 살 수 있는 세계란 가능하지 않았다. 권력의 주도권을 쥔 성별이 바뀐다고 다른 세상이 펼쳐지지 않았다. 마치 또 다른 중심이 생겨 그 주변을 정복하는 지난 과거가 반복되었다.
《파워》는 나에게 고유성이 있듯이, 타자에게도 타자만의 고유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생기는 잔혹함을 말하는 소설이었다. 특정한 성이 다른 성보다 더 온화하며 배려심이 있고 평화를 수호하려 한다는 선입견을 무너뜨렸다. 권력의 자리에서 배제된 이들이 권력을 잡을 때, 우리는 약자를 향한 공정함과 관대함을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음을 소설로 보여주었다. 권력을 50대 50으로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소설은 묻는다.
소설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긴박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지루할 틈이 없다. 다만 세계란 공간에서 여러 주인공의 이야기가 산발하는 서사가 난 헷갈렸다. 무엇보다 액자형식의 소설로, 소설 밖에 남류 작가와 편집자(혹은 소설가)의 대화는 《파워》를 이해하는 또 다른 장치다. 다양한 장치로 소설은 성별을 계속해서 읽는 독자가 끊임없이 성별을 의식하게 만들고, 또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작가의 성별이 무엇인지, 성별이란 프레임이 소설의 가치를 판단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지도 묻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 소설이 진짜 말하고 싶었던 건 뭘까. "과거에 저지른 일보다 앞으로 할 일이 중요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실상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단다. 항상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법이지. 지름길은 없어. 이해와 지식에의 지름길은 없단다!"라고 하는 《파워》. 엠마 왓슨의 추천의 마지막 말을 나 역시 똑같이 반복할 수밖에 없다.
I’m excited to hear what you all make of the novel.
(나는 여러분이 이 소설을 어떻게 읽으실지 무척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