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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그럴 수 있는 일과 그럴 수도 있는 일이 있다. 살아가며 참 많은 일을 겪지만, 그 모든 걸 '일'이란 단어 하나로 퉁치곤 한다. "그런 일이 있었어."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 일, 어른이 되고 회사를 다니며 '그런 일'이 점점 많아진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그런 일'을 자세하게 들려준 소설집이었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똑같은 일은 아니지만 비슷한 감정에 마음이 무너지는 일, 허탈한 일, 씁쓸한 일, 안도하는 일, 아쉬운 일, 행복한 일, 설레는 일, 힘이 되어주고픈 일을 겪는다. 등 다양한 일에 대한 단편 소설을 엮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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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데, 글이 쫄깃쫄깃 좋았다. 나도 모르게, "그래, 이거지."싶은 생각이 순산 순간 스쳤다. 공감이 가는 소설이었던 이유는 소재가 내가 겪었을 법해서가 아니라, 내가 느꼈을 감정을 잘 표현하는 데 있었다. 설명으로 공감을 이끌어내지 않고 표현으로 공감을 만드는 소설들이 많았다. 군더더기처럼 많은 표현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글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조사나 형용사가 나는 묘하게 마음에 꽂혔고, 그 뉘앙스가 좋았다. 그래서 소설을 한번 잡은 순간 놓을 수 없었고 단숨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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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당신을 기억해요. 나는 얀의 아내입니다. 당신이 도와줬던 이야기를 들었어요. 고마워요. 얀이 곧 일어나면 아침식사를 하면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겠어요."
나는 봉투에 적혀 있는 주소가 맞는지 여러 번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노인은 아직 그곳에 있었다. 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부인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아침밥도 먹고, 늦잠도 자면서.
나는 눈물을 닦고 내가 가진 가장 커다란 노트와 마커펜을 꺼냈다. 그리고 큼직한 글씨로 미루고 미뤘던 편지를 다시 쓰기 시작해다.
Dear. _212-214쪽, <탐페레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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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았던 소설은 소설집의 맨 마지막 작품 <탐페레 공항>이었다. 한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던 일을 접은 주인공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똑같은 직업을 나도 가지고 싶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 꿈 때문이 아니라, 그저 바쁘고 지친다는 이유로 정말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을 놓쳤던 적도 있었기에, 그 놓친 소중한 사람과 관계를 다시금 회복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없어 서글픈 마음까지도 모두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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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바라고 있었다. "이 이야기만큼은 제발, 슬픔보다 기쁨이 더 많기를."하고 말이다. 다행히 이 소설의 끝은 슬픔이 아닌 기쁨이 많았다. 너무 늦지 않은 때에 그녀는 자신의 관계가 다른 궤도를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 기회를 잡게 만든 것이 그녀가 놓아버렸던 꿈에 대한 아쉬움이라는 서사까지 모두 좋았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가장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일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가장 아름답고 단단하게 이야기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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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마음이 수없이 흔들리고, 그럴 수 있는 일로 덤덤히 넘길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는 일로 버티는 일도 있고, 때로는 간절히 부여 접고 싶은 일이 있다. 그 일에서 슬픔만이 아니라 기쁨을 발견해 소설에 담은 장류진 소설가의 앞으로 작품이 기대된다. 좋은 소설을 많이 써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