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책을 더하다

여행할 땐, 책 - 떠나기 전, 언제나처럼 그곳의 책을 읽는다
김남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1월

왜 여행을 떠날까? 나는 왜 여행을 좋아할까?

반복되는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바람일까. 아니면 낯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일까. 아니다. 나는 여행할 때면 조금 더 생기 있고 용감해져 온몸의 감각을 활짝 여는 내가 좋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났고, 지금도 좋아한다. 여행을 할 때면 꼭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책'읽기다.

가볍게는 그 나라를 나보다 먼저 다녀온 사람의 여행기를, 마음을 조금 더 쓰면 그 나라의 역사를 정리한 역사서나 그곳을 대표하는 문학가의 작품을, 더욱더 마음을 들이면 그 나라의 미술 작품에 대한 책까지 섭렵하고 떠난다. 짧게는 2박 3일 길게는 한 달이란 시간 동안의 여정에서 만나는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한 나만의 준비운동이었다.

"내 인생의 필수품 두 개를 고른다면 여행과 책이다." 책의 첫 구절을 읽으며 느꼈다. 이 사람은 여행과 책에 있어서 나와 같은 분이다. 여행 DNA와 책 DNA가 모두 깨어난 사람이다. 아니, 나보다 더 여행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단번에 스쳤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여행작가 김남희의 에세이 《여행할 땐, 책》을.

여행은 결국 돌아오는 것이고, 언젠가 다 읽은 책은 덮어두듯. 그 순간의 경험은 어느새 추억과 기억으로 바뀌고, 나는 일상을 살아간다. 이 책은 다른 여행기들과 달리, 여행을 떠나라고 등을 떠밀지 않았다. 내 일상이 담긴 주머니에 손을 넣어 어디 구멍이 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픈 마음을 불렀다. 또는 내가 보내온 시간 동안 흘린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책과 함께한 여행을 기록한 글이지만, 그 생각이 머무는 자리는 사소한 일상이었다.

"모든 것이 소멸해가는 세월 속에서 삶의 의미가 되어주는 건 이토록 구체적이면서도 사소한 것들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제 삶의 무게를 껴안고 살아간다.
때로는 찰나의 희열에 젖기도 하지만, 일상의 대부분을 우리는 외로워하거나 상처를 주고받으며 흘려보낸다."

스물다섯 권의 책과 스물다섯 번의 여행이 짝을 이룬 글 속 생각을 따라가면 나의 일상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내가 가본 곳도 있었고, 내가 읽은 책도 있었으나. 내가 느끼고 경험한 바와 같지 않았고 모두 달랐다. 그런데 그 다른 것들을 나도 모르게 내 일상을 대하는 태도로 끌어당겼다. 작가가 닿은 낯선 곳, 읽어낸 책장 너머에 놓인 이야기 중 가장 마음속 깊이 닿은 건 이것이었다.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들에 대한 다정하고 성실한 태도.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한다 해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다 해도 자신의 세계를 아끼며 가꾸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삶의 품격이란 결국 그런 마음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공간에 대한 밀도가 높아질수록 시간의 밀도 또한 단단해질 것 같다. 공간을 변화시킴으로써 시간의 성질까지 바꿔낼 수 있다는 것을 백작의 삶이 증명했다.

작가는 여행과 책을 통해 세상의 여러 곳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 모든 순간은 현실이면서 동시에 그녀만의 생각에서 일어나는 상상이기도 했다. 지난 여행과 책이 오가고 경험과 추억이 어우러져 지금의 작가와 만나 완성된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내가 여행 에세이를 읽는 것인지, 독서 에세이를 읽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몇 번을 헷갈리고서야 알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경험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김남희 작가의 여정에서 나의 독서와 나의 여행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책이란 씨줄과 여행이란 날줄로 엮어낸 《여행할 땐, 책》에 나란 존재를 수놓으며 알았다. 부러움과 동경의 시선으로 여행기를 바라보지 않을 만큼, 나도 "나라는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음을."

여행과 책을 통해 세상과 사람 그리고 나를 들여다보는 《여행할 땐, 책》.
여행과 책을 이야기하지만, 두 가지 주제에 한정되지 않는 책이었다. 읽다 보면 느낌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