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책 -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물건의 역사
키스 휴스턴 지음, 이은진 옮김 / 김영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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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묵직하고 복잡하고 매혹적인 공예품, 인류가 1,500년 넘게 쓰고 인쇄하고 제본한 책의 역사, 책 제작, 책다움에 관한 책이다. 당신이 보면 아는, 바로 그 책에 관한 이야기다.

_들어가며 16 - 17쪽

보통 내 가방에는 두 권의 책이 들어있다. 읽어야 하는 책과 읽어야 하는 책이 읽기 싫을 때 읽는 책. 책을 읽을 시간을 따로 만들지 않고 틈나는 대로 책을 읽는다. 시간과 시간 사이가 바로 내가 책을 펼쳐 보는 때다. 가방에 책이 한 권이라도 없으면 불안하기에 내가 가방을 구입할 때 고려하는 건 딱 하나다. 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인지 아닌지. 전자책이 편하고 좋은 걸 알지만, 그럼에도 난 종이책으로 읽는 이상한 고집쟁이다. 그런데 기원전 4,000년대 말 이전이나 그즈음에 발명된 파피루스로부터 시작한 종이책에 대해 난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내 인생에 책이 찾아와 이렇게 내 인생의 상당 부분을 함께 하는 것이 몹시 자연스러워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질문을 건네는 책을 만났다. 내 손에 자연스럽게 감기는 이 책의 감촉을 느끼기까지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아느냐고. No Paper 시대를 여는 전자책이 등장했고, 귀로 듣는 오디오북까지 있기 이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왔던 종이책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책의 책》이 나에게 묻고 있었다. 종이책이 얼마나 굉장한 존재인지부터 어떻게 내가 읽을 수 있게 되었는지 그 모든 걸 살펴볼 수 있는 바로, 《책의 책》을 만났고, 펼쳤고 읽었다.


책의 시작은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할까. 저자는 '종이'의 탄생에서 그 기원을 찾았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부터 중국 채륜이 만든 한지까지. 동서양을 함께 다루며 시작한 종이의 역사는 제지 공장에서 우리가 만지는 종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흥미로운 건, 책 자체에 사용되는 종이에 대한 설명으로 모든 것을 마친다는 점이다. 책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인류 역사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대신 책의 물리적 형태가 잘 보존되기 위해 산성화가 덜 되는 중성지가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을 담고 있다. (참고로 《책의 책》은 100년 또는 그 이상 보존이 가능한 중성지에 인쇄한 책이다.)


본문에 대해서도 문자 너머에 어떤 의미가 보다 본문을 찍어내는 글자와 잉크 그리고 인쇄 기술에 집중한다. 책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며 금속활자 기술을 통해 책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초점을 맞추었다. 흥미로운 건, 인쇄술이 발전했을 때 "새로운 발전에 모두가 행복해한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인쇄기를 가동한 첫날부터 지식인들 사이에 가장 유행하던 소일거리는 인쇄업을 장황하게 비판하는 글을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자책이 잉크로 인쇄하는 활자를 벗어나는 것일까? 종이책을 고집하는 것도 오래된 시스템이 전자책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것인데 이를 혼자 따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모든 역사 이론은 늘 아주 깔끔하고 꽤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불친절한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한 현실 세계에 발이 걸려 비틀거리기 전의 얘기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고집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종이책과 전자책의 스펙을 비교하며 종이책이 더 나은 이유를 찾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본문 뒤에 나온 삽화에서도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인쇄기술이 뛰어나도 전자책이 결합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기술이 더 뛰어나다. 책을 읽을수록 그 발전의 끝에 전자책이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사실이 그럴지도 모른다.


방대하고 해박한 책에 대한 지식이 나열된 《책의 책》을 읽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책의 의미가 아니라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물리적 역사를 다룬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의도대로 나열된 책의 역사를 읽는 것이 이 책의 묘미다. 유명한 저자의 이야기도, 유명한 출판사의 이야기 대신 내가 손에 잡는 책이 지금의 모양이 되기까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기여한 사람을 위한 책이었다. 수많은 사람의 기술에 기술이 더해져 만들어진 것이 바로 책이었다. 새로운 책이 서점에 진열되어 있고, 또 어디선가는 책이 인쇄소에서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새 책 뒤에 이렇게 기나긴 역사가 더해져 있다.


이렇게 두꺼운 책으로 엮을 만큼 역사가 쌓인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책이 직사각형인 이유는 소, 염소, 양의 가죽이 직사각형이기 때문"이고, "나그마함디 코덱스처럼 다루기 편한 적정 크기로 만든 이유는 사람들이 이 크기의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걸 그렇게 책이 지금의 형태로 올 수 있었던 이유를 확인할수록 나는 종이책을 더 좋아졌다. 그렇게 종이책의 형태가 지금까지와 우리가 떠올리는 책다움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을 읽다 보면 왠지 내가 읽는 종이책이 더 반짝여 보인다. 그렇게 나는 《책의 책》과 함께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물건"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추신, 《인간 가죽으로 만든 책 처녀들의 순결과 타락에 관한 생각》(이 책은 옻나무로 직접 무두질한 여성의 피부"로 만들었다.)이 내가 방문했던 웰컴 도서관에 보관된 책이었다니. 웰컴 컬렉션만 보고, 도서관에 들어가 보지 못한 나는 충격적인 책의 존재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물론, 알고 있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책도 아니고, 정서적으로 조금 거리를 두어야 하는 책이지만 그럼에도 궁금하고, 상상으로 가늠하는 감정과 마주했을 때 감정이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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