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실험실 - 위대한 《종의 기원》의 시작
제임스 코스타 지음, 박선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의 관심은 그가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가 아니라, 그 이후로 그가 다른 과학 연구를 수행하면서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얼마나 더욱 신중해졌는지를 살펴보는 데 있다. _ 63쪽


재작년 영국 여행을 갔을 때, 영국 곳곳에서 다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흥미로웠던 곳은 비글호 여정이 시작되었던 폴리머스 항구와 옥스퍼드 자연사 박물관이었다. 다윈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종의 기원》. 이 두 가지 외에 아는 바가 없었던 난, 영국 곳곳에 남겨진 그의 자취를 살펴보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신이 모든 세계를 만들었으며, 신의 질서 속에 이 자연이 움직인다고 주장한 자연신학이 주류 학문이었을 때, 그는 질문을 한다. "정말 그럴까?" 처음부터 그가 자연신학에 의문을 제기했던 것은 아니다. 한때 목사가 되어 박물학자가 되고자 한 그의 이력이 말하듯, 그는 한가지 사실을 끝까지 파고드는 집중력을 발휘해 '기존의 자연 질서에 대하여 질문했고, 그 안에 어떤 진리가 담겨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그 모든 역사가 이루어진 곳이 바로, 40여 년 동안 가족과 함께 살았건 다운하우스였다.
다운하우스 뒷마당이 그의 실험실이었고, 그가 바라본 세계였다.


1839년 3월에 그는 이렇게 기록을 남겼다.
"이렇게 평화로운 숲, 이렇게 곡식이 넘치는 들판에서 모든 생명체가 소리 없이 끔찍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다." _ 139쪽


《다윈의 실험실》은 그가 다운하우스에서 어떤 실험을 하였는지 소개하는 책이다. 한마디도 다운하우스 실험에 대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관찰하고 실험한 장소는 자신의 뒷마당이었지만, 그 뒷마당에서 일어난 일들은 과학사 뿐만 아니라 한 세기의 방점을 찍었고, 세상의 변화를 불러왔다. 부끄럽게도 아직까지 《종의 기원》을 읽지 않은 내가, 이 책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과연 그의 이론과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의 실험 보고서를 읽는 것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될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겨 차근차근 다윈의 실험을 살펴보면서 내가 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히려 그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집약한 책 《종의 기원》이 아닌, 뒷마당 실험가로 그를 만난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스칠 정도였다. 비글호를 타고 세계를 관찰하고, 그 외에도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길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의 삶이 왜 그랬는지를 분석한 뒤 본격적으로 그의 실험관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비글호에서 다윈이 했던 청년 특유의 발랄한 실험들은 장난삼아 즉흥적으로 행한 것도 있었겠지만, 그런 것조차 그가 얼마나 호기심 많은 사람이었는지,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고 배우기를 열망한 사람이었는지 보여준다. _ 51쪽


다윈은 확실히 남들과 달랐다. 단지, 그가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좀처럼 할 수 없는 주장을 펼쳤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어떻게 그가 《종의 기원》을 쓸 수 있었는지 그가 어떤 실험기였고 과학자였는지 알 수 있었다. 버클리 대학교의 식물학 교수인 허버트 베이커의 표현처럼 세심한 관찰력을 가지고 있었고, 저자의 표현처럼 다윈 자신만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뒷마당이란 물리적 범위가 작은 곳에서 실험했지만, 그 결과가 적용될 수 있는 범위까지 작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자연은 가장 세심한 관찰자를 낳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눈높이를 가장 작은 나뭇잎에 맞추어 대지 위에 놓인 곤충의 시야를 갖도록 우리를 초대할 것이다."라고 다윈을 표현한 문장에 왠지 공감이 갔다.


다윈의 《연구 저널》에는 '아름답다'나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무려 105번이나 나오고, '기쁨'과 '기쁘다'는 37번 정도 나온다. '장엄하다'는 6번밖에 나오지 않지만, 훔볼트가 책에서 말한 것 같은 황홀한 순간을 목격했을 때를 표현할 때마다 이 단어를 썼다. 그렇다면 다윈이 겸손한 마음 그리고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연구 저널》을 훔볼트에게 증정했을 때, 그리하여 훔볼트가 자신의 책을 칭찬하고 빙하현상과 화산 작용, 날씨, 해류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에 관해 다윈에게 질문하고 의견을 보내주었을 때는 또 얼마나 기뻤을까? _ 52쪽


비둘기, 난초, 꿀벌, 지렁이에 이르는 그의 실험과 관찰 대상은 정말 다양했다. 자연의 진리를 밝히기 위해 그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생물체를 대상으로 삼았다. 그 관찰을 통해 집대성한 진화론은,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다."라는 식의 자극적인 표현으로 명명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때때로 자녀와 함께 벌을 쫓으며 관찰을 반복하고, 동료 학자, 이웃 가족과 진지하게 또 친근감 있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갔다.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의 많은 편지에 침묵하지 않고, 답을 하며 소통하는 모습은 《종의 기원》 삽화나, 옥스퍼드 자연사 박물관에서 봤던 그의 석고상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누구보다 인간적인 과학자였고,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는 고집스러운 과학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논리적인 추론은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뻐꾸기 새끼가 배다른 형제의 둥지에서 밀어내는 것도, 개미가 노예를 사냥하는 것도, 맵시벌과 유충이 살아 있는 모충의 몸을 파먹는 것도 모두 특별히 부여받거나 창조된 본능이 아니라, 모든 생물의 발전을 이끄는 일반 법칙 즉 그 생물을 증식시키고 변이 시키며, 강자는 살리고 약자는 제거하는 법칙의 작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마지막 문장은 독자들에게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다윈은 소중한 아이를 병으로 잃고 참담한 심정으로 그 글을 쓰면서 기생하는 종으로 고통받는 다른 모든 종을 포함해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비참한 불행을 간단히 신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목사인 그의 친구들이 그 모든 것에는 계획이 있고 최선을 위한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그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편 그의 말은 자연에도 '노예제'가 있다는 이유로 노예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반기를 든다는 중요한 의미도 있었다. 이 세상에 신의 계획에 따른 노예제라는 것은 없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_ 227-228쪽


그가 매정하고 독한 과학자라 말할 수 없었다. 10남매의 아버지였고, 다운하우스에서 함께 살았던 제인 다윈의 남편이었던 그가 매정하고 독했다면. 그는 정말 고독한 괴짜 과학자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랜 시간 연구를 거듭할 수 있었고, 오랜 시간 공고하게 자리한 사상과 과학적 통념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건, 자신만의 원칙이 있었고, 그 원칙에 따랐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원칙에 대화는 항상 있었다. 그의 생각과 고민을 아내가 알고 있었고, 아내는 자녀들에게 전했다는 이야기에서. 그가 고독한 괴짜 과학자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실험실을 보고 있으면, 차고 이론 속 차고가 떠오른다. 미국의 IT 기술 혁신은 차고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의 손에서 이루어졌다는 의미의 이론이다. 다윈의 뒷마당은, 미국의 차고와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지만 아주 작은 일에 관심을 쏟으며 "왜"와 "어떻게"를 계속해서 물었던 그의 뒷마당에서 태어난 건 "IT 기술"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이론이었다.


"이것은 세계라는 판 위에서 벌이는 위대한 체스게임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생각만큼은 언제나 전 세계를 넘나들었다. _ 238쪽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만든 그의 생각의 품을 《다윈의 실험실》에서 확인할 수 있어 뜻깊었다. 언젠가, 《종의 기원》을 완독한 뒤 다시 《다윈의 실험실》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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