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블러드 -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
존 캐리루 지음, 박아린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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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하늘 높이 고공 행진하는 사람이 나이길 바라며, 자신의 인생에 실패가 아닌 성공만 계속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그렇게 순탄할까? 간절히 성공을 바라는 이유는 성공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보다 실패에 익숙하게 세팅된 인생이란 게임에서 자신의 성공을 확신하다 못해 맹신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피 한 방울로 수백 가지 질병을 한 번에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했다고 말한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가 그 주인공이다. 유례가 없는 초대형 의료 사기극을 펼친 그녀의 삶을 파헤친 책이 나왔다. 『배드블러드 :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빠르고 높게 비상했던 테라노스의 허상을 밝힌 르포르타주다. 범죄 스릴러보다 박진감 넘치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오가는 의료 사기극이 실제 벌어진 일임을 믿고 싶지 않지만, 『배드블러드』 는 사실에 기반한 거대 사기극을 낱낱이 밝힌 글이다.


퓰리처상을 2회나 수상한 《월스트리트저널》을 대표하는 기자 중 하나인 존 캐리루는 의학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한 의사의 전화를 받는다. 테라노스가 보유한 기술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내용이었다. 존 캐리루는 엘리자베스 홈즈의 인터뷰를 찾아본다. 피 한두 방울만으로 약 200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휴대용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개발한 회사의 대표인 그녀는 진단 기기의 작동 원리에 대한 질문에 엉뚱한 답변을 한 모습에서 의구심을 품는다. 그의 의구심은 결국 테라노스 기업이 세상에 자랑스럽게 홍보하던 기술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수많은 투자자와 언론을 통해 보여주었던 믿음은 사기였다는 걸 밝혀낸다. 테라노스 직원 60여 명을 포함하여 퇴직한 사람들까지 합쳐 약 160여 명의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의 인터뷰를 토대로 테라노스의 허상을 밝혀낸 과정은 마치 한편의 영화와 같았다. 아니, 정말 영화였으면 좋겠을 이야기 그 자체였다.


『배드블러드』는 이미 밝혀진 사실을 하나하나 분석한 책이다. 그 답을 다 알고 있지만, 그 과정을 존 캐리어가 책으로 엮은 이유가 무엇일까. 의심하지 않았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생각들에 '물음표'를 던지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엘리자베스 홈즈는 존재하지 않는 기술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투자를 이끌어냈으며, 특히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임에도 그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 사람이다. 수많은 직원들이 그녀에게 기술의 위험성과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하여 경고를 했지만 그녀는 그 경고가 자신을 무너뜨리기 위한 계략이라고 생각했다. 양심이 전혀 없는 소시오페스라고 단정 짓는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세상이 소시오페스 한 사람에게 사기당했을 뿐이니까. 하지만 과연 그렇게 이 문제를 보는 것이 맞을까?


"저는 어려서부터 위대한 업적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으며 자랐어요. 그리고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목적 없는 삶이 사람의 성격과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계속 들어왔죠."
_『배드블러드』 22쪽


엘리자베스 홈즈는 누구보다 강하게 성공을 원했다. 제2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었고,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서 성공을 원했다. 성공에 대한 강한 집념이 성공했다는 확신을 준 것일까. 그녀는 자신의 성공을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테라노스의 기술이 객관적으로 볼 때 전혀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가까웠지만, 스스로는 다르게 보았을 것이다. 성공을 맹신한 나머지 현실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으며, 꼭 필요한 조언을 가차 없이 거절한다.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말을 따르면 기술자, 재무 담당자, 홍보 담당자, 연구원 등 그녀에게 우려를 표했지만 그녀는 자신 외에 아무것도 믿지 않았고, 그들을 적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의 성공에 자신 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환자의 생명은 그녀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설득할 때 감정에 호소하던 그녀의 모습은 회사 내에는 없었다.


하지만 앨런이 개인적 책임보다 더 걱정했던 건 환자들이 잠재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점이었다. 앨런은 잘못된 혈액 검사 결과가 초래할 수 있는 두 가지 악몽 같은 상황을 설명했다. 만일 결과가 거짓 양성으로 나오면 환자는 불필요한 의학적 절차를 밟아야 할 수 있다. 거짓 음성 결과라면 더욱 위험하다. 심각한 상태의 환자가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해 결국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_『배드블러드』 330쪽


자신의 성공을 지키기 위해 엄격하게 정보를 통제했다. 그녀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리플리 증후군이 떠오른다.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만을 진실로 믿으며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리키는 리플리 증후군을 앓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녀의 사기가 온 세상에 알려졌을 때, 그녀는 다른 사람들 탓을 하며 숨어버린다. 그녀는 자신이 말한 기술에 부족한 점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결코 사과하지 않았고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비열하고, 이기적이고, 세상을 왜곡했음에도 조금도 반성하지 않는 그녀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녀가 자신 있는 태도로 관객 앞에서 매끄러운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그녀가 지금까지 어떻게 그 자리에 도달할 수 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홈즈는 엄청난 세일즈우먼이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말문이 막히거나, 맥락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또한 공학 및 임상 실험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했으며,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서 신생아들이 수혈을 받지 않게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며 진심 어린 감정도 표현할 줄 알았다. 그녀의 우상인 스티브 잡스와 마찬가지로 홈즈는 현실 왜곡의 장을 일으켜 사람들로 하여금 일시적으로 그녀를 다시 믿게 만들었다.
_『배드블러드』 419쪽


그녀는 자신이 했던 행동을 베이퍼웨어의 일종이라고 여겼을지 모른다. 또 신기술과 의학이라는 낯선 두 분야를 결합한 테라노스의 이야기는 늘 그럴싸해 보였고, 그는 그럴싸해 보이게 만드는 능력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업 철학을 내세워 오랜 기간 이 사기극을 이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모두 정교한 사기 행각이었음을 의심했던 존 캐리루는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탐사보도를 막는 테라노스의 비밀에 가까이 접근했다. 엘리자베스 홈즈가 정교하게 쌓은 허상을 무너뜨리는 과정 역시 정교했고, 수많은 위협 속에서 존 캐리루는 2017년 초에 테라노스의 기업의 모든 비밀을 세상에 폭로할 수 있었다. 영화 같은 현실은 르포르타주에 더욱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가 언젠가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같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놀라움의 연속이지만, 사기의 끝은 씁쓸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흥미진진한 스릴러 같은 이 이야기가 소설이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전 세계 유명 투자자들과 FDA와 미국 증권 거래소까지 모두 속았던 사기의 끝은 참담했다. 기술을 통해 인류의 더 나은 삶이 더 빠르게 찾아왔다고 믿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좌절했다. 존 캐리루가 엮은 기록은 성공에 대한 맹목적 집착이 얼마나 정교한 사기극을 만들 수 있는지, 또 기업 내부에 정보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과학 기술이 발돋움했다면 그 기술에 대한 확실한 검토 필요성과 실리콘밸리에서 이루어졌던 베이퍼웨어의 심각성을 경고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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