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9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천은실 그림, 정지현 옮김 / 인디고(글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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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작품이 몇 개 있다. 그중에 하나가 『비밀의 화원』이다. 친구 어머니가 선물해주신 책이었는데 선물 받은 그날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좋은 고전 동화라며 추천했지만 다시 꺼내 읽지는 않았다. 그때 받은 좋은 인상을 간직하려고 한 건 아닌데. 이상하게 좋았던 소설을 다시금 꺼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메리, 디콘, 콜린 세 아이가 아름답게 가꾼 정원처럼 싱그럽고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말이다. 그러다 우연히 다시 읽게 되었다. 『비밀의 화원』, 추억 속 이야기를.


『비밀의 화원』은 유명한 동화 『소공자』, 『소공녀』를 쓴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이 쓴 장편 동화다. 그녀의 또 다른 작품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부모의 사랑'에 결핍을 가진 아이가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다. 『비밀의 화원』은 그녀가 쓴 동화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든 작품 중 하나다. 주인공인 메리와 콜린이 자연 속에서 성장하는 과정이 글 속에 듬뿍 묻아나기 때문이다.



"땅 위로 이것저것 잔뜩 올라왔어. 여기저기 꽃들이 잎을 펴고 꽃봉오리가 돋아나고 초록빛 베일이 회색을 거의 다 덮어 버렸어. 새들은 너무 늦었을까 봐 걱정하면서 서둘러 둥지를 만들고 있고. 비밀의 뜰에다 둥지를 만들려고 다투는 녀석들도 있다니까. 장미나무는 그렇게 쌩쌩해질 수가 없어. 샛길이랑 숲속에는 앵초가 피었어. 우리가 심은 꽃씨도 싹이 올라왔고. 아, 그리고 디콘이 여우랑 까마귀랑 다람쥐들이랑 갓 태어난 새끼 양을 데려왔어."
301쪽








메리는 인도 공무원으로 발령받은 아버지와 아름다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인도에서 자란 부잣집 외동딸이다. 바쁜 부모님은 늘 메리를 인도인 유모에게 맡겼고, 하인들은 주인의 하나뿐인 딸 메리를 두려워하며 하고 싶은 건 다 들어주었다. 메리는 정말 대단한 고집쟁이이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로 성장한다. 그런데, 메리가 살고 있던 인도에서 콜레라가 대유행을 하고, 메리는 가족과 하인을 전부 잃은 채 고아가 된다. 이후 영국으로 돌아와 요크셔에 살고 있는 고모부 댁에서 자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또 다른 주인공 콜린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 아들까지 잊어버린 아버지를 둔 메리의 사촌이다. 곱사등인 아버지처럼 자신도 곱사등이 될까 봐 두려움에 떨며 방안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콜린은 죽고 싶지 않지만, 곧 죽음이 자신을 찾아올까 봐 두려운 아이다. 그 두려움은 인도에서 메리가 그랬듯이 이기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아이로 자란다. 그런 콜린에게 비가 세차게 몰아치는 밤 메리가 나타난다. 인도에서 영국으로 와, 황무지가 주는 자연의 생기를 머금은 소녀가 말이다.




엄청나게 크기만 하고 삭막한 집, 휑한 황무지, 텅 빈 뜰까지 메리를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만일 평소 사랑받는 일에 익숙한 아이라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을 것이다. 비록 '심술쟁이 메리 아가씨'라 해도 외로운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59쪽



메리와 콜린은 참 많이 닮았다.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부모님 슬하에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 물질적인 풍요와 무엇을 해도 괜찮은 방치에 가까운 자유는 오히려 두 아이를 슬프고 외롭게 만들었다. "메리는 스스로도 자신이 보잘것없고 외로운, 길 잃은 아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라는 말에 메리가 느꼈던 외로움의 깊이가 느껴진다.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100개가 넘는 방과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는 하인이 있었지만, 두 아이의 마음을 온전히 채워주는 사랑은 없었다.






황무지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마사와 디콘 그리고 두 사람의 어머니 수잔만이 아이들에게 사랑을 안겨주었다.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황무지를 뛰놀길 권하고, 줄넘기를 선물하는 그 마음속에 담긴 건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이었다. 밟으면 부서지듯 단단해지는 흙을 느끼고 붉은가슴울새와 함께 비밀의 뜰을 찾는 메리는 스스로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기에 이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메리는 벌써 자신이 예전 같은 '심술쟁이'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자신의 사촌 콜린까지 비밀의 뜰에 초대하기에 이른다. 메리와 디콘과 만난 콜린은 건강해지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소년에서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는 건강한 소년이 되어있었다.


봄과 참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화원을 가꾸는 이야기여서가 아니었다. 메리와 콜린 두 아이의 변화가 따뜻한 봄날 깨어나는 새싹처럼 자라나는 과정이 이야기 전체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메리와 콜린의 드라마틱 한 변화에 비해, 이미 황무지 속에서 자연의 생기를 머금고 있던 디콘이 어렸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자연을 읽어내는 아름다운 생각을 질투해서가 아닐까 싶다. 이미 싱그러운(?) 디콘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생기가 생기는 두 아이에게 몰입되었다.



메리는 자기가 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미움과 사람들에 대한 심술궂은 생각, 그 어떤 일에도 만족하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 고집으로 가득할 때만 해도 얼굴이 노랗고 몸이 골골하고 심심하고 불행했다. 그러나 메리가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주변 환경은 메리에게 친절했다. 환경은 좋은 쪽으로 메리를 움직였다.
424쪽



하지만 계절이 달라질 때마다 달라지는 풍광을 말하던 디콘의 표현력이 인상적이었다. 비밀의 뜰이 진짜 봄을 맞이해 녹음으로 가득 차기 시작한 모습을 저자는 다양한 자연 묘사로 그려냈다. 자연 묘사와 함께 삼총사의 우정도 서서히 단단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0살인 메리와 콜린에게 필요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자연이 열어준 감각적인 경험은 두 아이를 성장하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지 않았나 싶다. 디콘에게서 시작해, 메리에게로 그리고 콜린에게로 이어지는 세 아이의 관계는 아직 덜 녹은 땅처럼 좀처럼 새순이 날 것 같지 않았지만 어느덧 아름답게 완성된 모습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로 담아내, 책장을 넘기는 순간이 즐거웠다. 언젠가부터 벚꽃이나 새싹보다 미세먼지 예보로 봄이 오는 걸 느끼는 나도 콜린과 같지 않았나 싶다. 세 아이와 함께 맞이한 싱그러운 봄날을 보고 있으니 왠지 산이나 수목원에 가보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이 다가오기 전에 연둣빛 새싹이 올라오는 봄의 기운을 느끼고 싶다. 책이 아니라 세 아이처럼 자연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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