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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벚꽃 에디션)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작년 어떤 에세이 한 권을 읽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재미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했고, 재미있는 제목보다 더 재미있는 작가의 재미있는 인생 살이를 담은 책이라 생각했다. 세상을 향해 더는 열심히 살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구나 싶어 신기했다. '열심히' 사는 인생을 놓을 수 없었던 난,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보다 낯선 세계를 바라보듯 신기한 마음이 컸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글 속에 퉁명스럽게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는 굉장히 당당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분명한 삶의 철학이 글에 담겨 있었다. 한마디로 본인의 색깔이 분명한 사람인 듯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했던 이유는 조금 열심히 살지 않아도, 열심히 살던 인생에 역습을 당해도 잘 넘기는 그의 태도에 매료된 것이 아닐까. 한마디로, 어떤 의미에서 인생에 득도한 그가 신기하고 그가 가진 생각의 여유를 가지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2018년의 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하완 작가의 글을 찬찬히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열심히 해야 할 일이 매일매일 넘쳤기에. 물론 2019년이라고 내 인생에 공백이 한가득 생긴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바쁘지만, 내 마음 상태가 달라졌다. 열심히를 내려놓는 인생 여행의 의미를 돌아볼 '태평함'이 드디어 생겼다.
여행은 시작됐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8쪽
열심히 살지 않는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시작되었다고. 그가 앞으로 삶을 열심히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책이 아니라, 지금까지 열심히 살면 될 것이라 믿었고, 열심히 살았던 삶과 다른 방식의 삶을 한번 살아보겠다고 말하는 책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시간 중 아주 많은 시간을 들여 떠나는 여행 같은 것이다. 자신이 다시 기꺼이 열심히 열정을 쏟을 것을 찾을 때까지 잠시 나의 열정을 모아두겠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허튼 곳에 나의 열정을 쏟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내 열정을 아낌없이 불사를 수 있을 때까지 아껴 두겠다. 내가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다짐이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2018년에 난 저자의 진짜 이야기 맥락을 읽지 못한 채 에세이를 읽었다. 책 제목에 담긴 의미가 이렇게나 의미심장한데, 그때는 미처 몰랐다. 이제야 사람들이 왜 이 책을 사랑했는지 알 듯싶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진짜 열정을 쏟고 싶은 곳에 열정을 쏟지 못하기에 그의 글을 읽으며 위로를 받았던 것이 아닐까. 하마터면 내가 열정을 쏟고 싶지 않은 곳에 열정을 쏟을 뻔했는데, 저자의 글을 읽고 마음을 쓸어내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혼자만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여행이다. 잠시 떨어져 바라볼 줄 아는 지혜다.
정말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감사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서 잠시 떨어져 있을 줄 아는 사람.
혼자 있는 외로움을 잘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혼자 있는 게 편하지만 결국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
외로움을 충분히 즐기고 나선
다시 사람들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고 싶다.
자, 충분히 즐겼다면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114-115쪽
누군가 보기에 젊은 것도 나이 든 것도 아닌 나이에 득도에 이른 저자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이야기를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부딪침이 있었을까. 과감하게 열심히 살지 않는 인생이란 여행에 떠나기를 다짐하고 실천에 옮기기까지. 그가 마음속으로 쓸어내렸을 슬픔과 힘겨움의 무게는 얼마만큼이었을까.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가벼운 듯 말하는 그의 말이 있기까지 그 뒤에는 그를 바라보는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열심히의 무게보다 어쩌면 더 큰 무게가 그를 짓눌렀을지도 모른다. 홍대에 들어가기 위해 4수를 감행했고, 디자이너 세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맛보기도 했고, 때로는 미대 입시를 앞둔 아이들을 지도하며 경쟁의 세계로 등을 떠미는 일을 해온 그가 열심히 사는 삶을 내려놓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어려운 것을 내려놓고, 나의 열정을 진짜 쏟기 전까지 '쉼'을 맞이하는 인생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렇게 어려운 선택을 한 후, 그 삶에 후회하지 않을 시간을 보낸 듯싶다. 조금은 쉬어가며, 조금은 느리게 걸어가는 인생도 괜찮을 수 있다고. 때로 자신의 생각에 훈수를 두는 사람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자신만의 야매 득도 팁까지 소개하며 즐겁게 살고 있다.
우리에겐 시도해볼 권리가 있다.
비록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라고 해도 말이다.
꼭 이뤄져야만 의미 있는 사랑은 아니니까.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196쪽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읽으며, 그때는 보지 못했던 문장에 위로를 받았다. 다행히 나는 열정을 쏟고 싶은 곳을 알고 그곳에 열심을 다하면 되는 사람이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자신의 삶의 페이스 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조금은 쉬어가도 괜찮고, 잠깐 걸어가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짜 자신의 삶에서 나온 따뜻한 진심이 담겨 있는 글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삶이나, 보편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진짜 자기 삶 속에서 겪었던 경험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기에 그가 말하는 삶의 방식이 내 삶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 맞이한 삶에서 '만족'을 느낀다는 것만큼은 인생의 정수가 아닐까 싶다. 내가 나만이 살 수 있는 인생을 느끼고 경험하는 데 있어 주변이 아닌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열심히 살고 싶은 삶을 알지만 때로 내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 그런 순간을 정말 많이 맞이했다. 2019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읽은 후 든 생각은 이루어지지 않는 그 순간순간에 내 마음이 이끄는 곳을 향해 나아간다면, 또 다른 인생의 풍경과 마주하지 않을까 싶다. 하완 작가가 여행하며 만난 풍경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세계 라면, 또 내가 발견할 '다행이야, 진심으로 열심히 살 수 있어서'의 세계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