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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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박완서 선생님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선생님의 글에는 선생님만의 느낌이 짙게 배어 있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는 지금까지 내가 읽은 선생님의 글과 사뭇 다른 느낌이 담겨 있었다. 소설이나 수필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그 미묘한 느낌이 글 곳곳에 맴돌고 있었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이 선생님의 다른 글과 왜 달랐을까. 그건, 이 짧은 소설들이 태어난 배경에 있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70년대에 쓴 것으로, 문단에 등단한 이후 신인작가로 활약했던 시절에 쓴 글이다. 당시 문예지가 많지 않았던 시절, 신인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요즘은 SNS를 통해 모두가 작가가 되어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내보일 수 있지만, 그때 그 시절은 그렇지 않았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회사 사보에 들어간 짧은 콩트 글을 엮은 것이다. 기업 홍보가 아니라, 즐거움과 문예 작품으로 할당된 공간에 채워나간 글이었다. 부업 삼아 썼던 글들을 엮어 낸 책이다. 글을 읽으며, 수필 같은 길이의 소설, 소설의 형태이지만 수필 같은 이 미묘한 느낌은 바로, 글이 태어난 이유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제법 두꺼운 두께에 빼곡하게 단편이 무려 48편 담겨 있다. 하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금방 읽을 수 있는 길이이기도 하지만, 편안한 문장과 군더더기 없는 내용 덕분에 나도 모르게 술술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무엇보다 1970년대 만들어진 소설이었지만, 고리타분한 소설이 아니라, '고아한 소설'이란 표현에 딱 맞게 담긴 생각이 멋있었다.


"부인, 그래서 나쁠 것도 없잖습니까. 전 지금 오래간만에 행복합니다. 가슴이 소년처럼 울렁입니다. 늙어도 행복할 권리만은 포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_ 「노인과 양떼」 중에


48편의 이야기는 어느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옛날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시민들의 이야기로, 근현대사를 다룬 시대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350만 원짜리 아파트, 당집이란 표현과 친근한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정감 가는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의 삶을 포착해, 그 안에 무슨 고민이 담겨 있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에 대하여 풀어냈다.


짧은 이야기인데, 몇몇 이야기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닮아있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었다. 어떤 이야기는 스킨십이나 로맨틱한 말없이 낭만적인 사랑을 표현해낸 솜씨에 놀랐다. 읽는 내 마음까지 간질거리는 이야기는 지금 연애소설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감성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마음 따뜻한 이야기는 내가 기존에 읽었던 선생님의 글의 느낌이 확 드러난 듯싶었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분명 1970년대에 쓴 글이다. 물론 오늘에 맞추어 개정을 거쳤지만, 소재와 줄거리는 70년대 이야기 자체였다. 막 아파트 단지가 세워지고, 도시와 시골의 경계가 명확해지고 있었다. 급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어갔지만, 많은 사람들은 가난에 허덕였다. 어떤 사람들은 부를 축적하여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2019년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은듯싶다. 여전히 상대적 빈곤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선생님이 그 시대에 포착한 문제에 대하여 사람들이 체감하는 온도는 여전히 다르다. 하지만 그 다름마저 들여다보고,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옛날이야기를 읽거나, 낡은 이야기를 읽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사람 냄새가 짙은, 박완서 선생님다움이 담겨 있었다. 딸이었고, 아내였고, 어머니였던 작가답게 세 가지 다른 입장에 녹여낸 글들이 많았다. 사실적인 글이라 유머 속에 가슴 뭉클한 감동이 이어서 왔다.


짧은 이야기였지만, 짧은 글 속에 자신다움을 꾹꾹 눌러 담은 박완서 선생님은 단연 최고였다. 글에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가볍고 짧은 소설이 새 옷을 입고 찾아왔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가셔가는 따뜻한 겨울날에 한 장 두 장 넘겨가며 읽기 좋은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더 기분 좋은 여운이 감돌았다. 아마 그 시대에도 좋았고, 처음 책으로 엮어졌을 때도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박완서 선생님이 돌아가신지 꽤 지난 오늘까지 좋은 걸 보면, 선생님의 짧은 소설에 담겨 있는 소담하고 단단한 메시지는 시대를 넘어서 그대로 통하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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