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마흔 고독한 아빠
이시다 이라 지음, 이은정 옮김 / 살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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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도시적이고 섬세한 문체, 부드러운 유머에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인생의 쓴맛과 슬픔을 한 방울 떨어뜨린 작품 성향."


『텅 빈 마흔 고독한 아빠』 속 주인공인 소설가 표현과 딱 들어맞는 소설이었다. 그렇다,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일본 출판계 사정과 문학상이 소설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대로 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고로 아내를 떠나보내고 싱글파파로 사는 남자의 감정 표현도 문장에서 느껴졌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칫치는 나다. 나 자신과 가까운 주인공을 쓴 것은 처음이다”라는 『텅 빈 마흔 고독한 아빠』의 저자 이시다 이라의 말처럼. 저자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서른아홉에서 마흔이 되었을 때 『텅 빈 마흔 고독한 아빠』 주인공이 문학상을 수상했듯, 이시다 이라도 마흔셋에 나오키상을 받았다. 그가 중년에 느꼈던 감정을 투사한 작품은, 허구적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소설가가 겪었을 법한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스쳤다.


시작은 그가 쓴 소설 한 권이 초판 부수가 깎여 맥이 풀리면서다. 이어서 갓 완성한 소설 초고를 담당 편집자에게 보낸 후, 평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밤을 새워 초고를 완성한 날은 아들의 학교 참관일이었다. 잠시 눈을 붙이고 빠르게 아들의 학교를 찾아간다. 소설가이며 싱글파파로 사는 한 남자의 일상을 나열한 중간중간에 그가 마음 속으로 삼킨 말이 소설 단락단락 박힌다. 가족을 잃은 후, 그의 인생은 가정과 일의 균형을 잡아가는 듯하지만, 음울한 느낌을 가진 분위기였다. 상황도 상황이고, 잘 해내고 싶은 저자의 의욕만큼 따라주지 않는 현실이 정말 현실적이었다. 그러니 동료들의 말에 시니컬하게 날선 반응을 보이건 이상하지 않았다.


“뭐가 괜찮다는 거야. 10년간 계속 ‘다음은 네 차례다, 다음은 네 차례다’라는 말을 들어왔다고. 이제 미래에 기대를 거는 데 지쳤어.”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 믿으며 하루하루 애쓰며 과거로 보내던 고헤이에게 변화가 일어난다. 한 서점 MD가 고헤이 소설에 감동을 받아 적극적인 마케팅을 한 것이다. 그 결과 그의 소설이 눈에 띄게 판매 부수를 올리고, 처음으로 저자 사인회까지 연다. 거기다 그 해 이쿠타가와상 후보작에 들어간다. 데뷔한지 10년 만에 찾아온 큰 기회에 그는 기대와 설렘 등 만감이 교차한다. 게다가 아내와 사별하고 오랜만에 느낀 연애 감정에 한없이 요동치는 그의 모습은 달라진 상황만큼이나 역동적이었다. 그에게 일어난 일을 잇는 또 다른 일들은 고리처럼 나열되어 있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고헤이의 디테일한 감정 묘사가 돋보였다.


하지만 역동적인 변화는 거품처럼 꺼져버린다. 그 꺼지는 찰나에 고헤이의 쓸쓸함은 이전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모든 것이 끝났다. 하지만 이제부터 다음 싸움이 시작된다. 이기지 못했다면 좋은 패자가 되자."라며 다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어디에도 기댈 곳 없이 스스로 다독이는 코헤이가 안쓰러워 그의 고독함이 깊어 보였다. 문학상은 결국 그와 같은 소재로 삼았지만, 훌륭한 문체와 서사로 표현한 후배 작가에게 돌아간다.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넨 그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소설을 높게 평가한 선배 소설가의 평론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다음에 찾아올 기회를 위해 힘을 낸다.


칫치, 파이팅
늘 응원하고 있어요.
나는 언제나 아빠 편이야.


소설가로써 재도약기에 올라선 그의 곁에 있는 가족. 아들 가케루. 몹시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때때로 어린 아들을 돌보고 챙기는 것이 벅차다는 걸 느낀다. 좋은 소설가가 되어가는 건 가시적으로 보이지만, 좋은 아빠인지 알 수 없어 힘들어한다. 오늘을 어제로 보내며 그럭저럭 보내지만, 그럴 때마다 의젓한 아들이 눈에 밟히고 마음에 박혀 그의 고민은 깊어진다. 그리고 그 깊어진 고민의 깊이만큼 그가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소설의 깊이도 깊어져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소설 제목만 나와, 어떤 소설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고헤이의 1년을 따라가면 그가 마흔에 맞이한 오늘이 불현듯 찾아온 건 아니었다.


“남자는 다들 약하다고 생각해. 자신이 진짜 곤란에 처해 있거나 고민이 있으면 아무한테도 말 안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거든. 그러니까 아슬아슬할 때까지 참다가 어느 날 갑자기 툭 하고 부러져버려. 40~50대 남성의 자살 원인은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 외톨이에다가 마음을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다고 생각해.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가까이 있는데 말이야.”


아슬아슬 위태로운 중년의 소설가가 자신의 마음이 정말 텅 비었음을 깨달은 순간, 그의 앞으로 삶의 궤적이 이전과 달라지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어제로 보내기 바빴던 오늘이 아닌, 제대로 된 오늘을 맞이한 고헤이는 느낀다. 자신의 몸이 뜨거워지는걸.


그렇게 이 소설은 끝났다. 싱글파파, 마흔, 소설가 이야기가 담긴 이 소설 나는 짐작만 가능한 감정을 담고 있어 더 흥미로웠다. 소설에 공감한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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