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와 권력 - 혼돈의 시대를 헤쳐가기 위한 정치학 수업
나다 이나다 지음, 송태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1974년에 출간된 『권위와 권력』은 약 45년의 시간이 지난 2019년에도 전해지고 있는 책이다. "혼돈의 시대를 헤쳐가기 위한 정치학 수업"과 걸맞은 내용이라면, 지금으로부터 45년이 더 지난 뒤에도 사람들에게 전해질 책이 아닐까 싶다.


"저어, 저는 지금 학교에서 반장을 하고 있는데, 저희 반은 단결력이 전혀 없습니다. 아주 뿔뿔이 흩어져 있어요. 다들 자기 멋대로 굽니다. 반장으로서 모두를 한데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제 한 질문일까? 1970년대 일본 학생이 이와 같은 질문을 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74년에 출간된 책의 내용이다. 지금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단결력으로 똘똘 뭉친 시대와 일본이라는 무대에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튀는 것을 피하고, 단합과 단결과 잘 어울리는 그 사회에서 나온 질문이라니. 재미있었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은 뒤 이 질문이 그때에도 있었고, 지금도 유효한 질문이라는 사실에 위로가 되었다.


귄위와 권력에 대한 정의는 쉽지 않다. 권위는 괜찮은 것 같고, 권력은 괜찮지 않은 것 같은 정도랄까? 아마 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모두 실체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의문을 품기에 영향력하에 사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의문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권위와 권력』은 확실하게 잡히지 않는 두 개념을 통해 정치를 이해하는 토대를 제공한다.


『권위와 권력』은 '나'라는 주인공과 'A'라는 학생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다. A가 의문을 제기하면, 그에 대하여 '나'는 듣고, 다시 질문을 한다. 마치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있으면 간략한 형태의 소크라테스식 대화와 비슷하다. 문제를 느끼지만 그 방법을 한정적으로 바라보는 학생에게 '나'는 묻는다. 문제에 어떤 연결고리가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는지, '나'의 질문을 통해 학생은 새로운 시야가 열린다. 때로는 구체적인 설명도 함께 한다.


이야기는 권위에서 시작한다. 단합이 안되는 상황을 영웅을 통해 해결하려는 학생의 의견에 질문을 한다. 무엇이 권위이며 그 권위가 실추된 것이 어떤 것인지 차근차근 묻는다. 그리고 질문이 이어진다. 질문과 설명이 자연스레 교차하여 나온다. 저자의 설명은 카리스마 권위, 전통적 권위, 법적 합리적 권위로 막스 베베의 권위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듯 보인다.


이후 권위가 무너진 자리에 들어선 권력에 대하여 설명한다. 권력은 개인의 영향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따르게 하는 힘이다. 한마디로 억지로 따르도록 만든다. 권위와 권력은 분명히 다르다. 정상적 사회에서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 때 그 차이를 모두가 안다. 권력으로 짓누르려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낀다. 하지만 사회가 위험에 빠지는 때가 문제다. 이때는 권위와 권력을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권력과 권위가 이중으로 겹쳐진 하나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말을 듣게 만들고, 단결력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정말 무서운 상황이다.


권위와 권력이 무엇인지 설명한 후, 사람들이 어떤 때 권위에 순응하며 따르는지 말한다. "권위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그것을 자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자에게 투사하고 투영한 것"이다. 또 "거기서 무지를 자각하는 것은 자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의견이 꽤 흥미로웠다. 권위가 생기는 순간 이미 사람들 사이에 서열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판단하는 걸 포기하고 누군가에게 판단을 맡기는 행위거든. 거기에 권위가 파고들 틈이 생기는 거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자신은 모른다며 자신의 무지로 앎을 포기하는 것은 권위가 파고들 조건 가운데 하나라네. 다른 설명 없이 안전하다는 말만 들으면 그 사람의 말을 믿는 것 외에 안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시민들이 의심하고 질문할 수 있는 것을 막는 것이 있다면, 이를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 의심과 질문은 "합리성"이라는 기준하에 있어야 하겠지만. 합리적 의심과 합리적 질문은 중요하다. 그 질문이 바위에 계란을 치는 것처럼 무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상에 닿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인간에게 어울리는 것이라는 '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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