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든든한 내 편이던
박애희 지음 / 걷는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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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하루에도 몇 번씩 부르던 그 말을 한순간 가슴 먹먹함으로 다가오는 말로 바뀌게 만든 책이 있다. 바로,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이다. 라디오 작가 박애희가 쓴 에세이가 그 주인공이다. 라디오 작가라는 길을 걸으며 딸에서 아내로 그리고 엄마로 삶을 살다, 어느 날 엄마를 그리고 아빠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다. 그리고 물밀듯 밀려들어오는 온갖 감정이 저자의 삶을 덮쳤다. 깊은 밤, 세상이 어둠에 잠기고 엄마가 없어 한없이 슬픔이 밀려올 때 그녀는 글을 썼다. 마치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를 여읜 슬픔을 《애도 일기》로 담아냈듯, 그녀는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을 썼다.


돌아가신 엄마에 대해 쓴 에세이로, 귀로 듣는 글을 쓴 작가답게 그녀의 글은 물 흐르듯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때문에 마음이 시큰거렸다. 솔직하고 담담한 어조로 쓴 글은 가벼운 듯 보이지만, 작가가 마음으로 쏟은 눈물을 머금고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아릿하게 만든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붉어지는 눈시울에 몇 번을 쉬어가며 읽었다. 우리 엄마 이야기도 아닌데, 왜 자꾸만 몰입을 하게 되는 건지.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작가의 행동에서 나를 그리고 있고, 작가의 엄마에게서 우리 엄마가 겹쳐졌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눈물샘만을 자극하며 울게 만드는 건 아니다. 스리슬쩍 눈물이 나오는 순간도 있고 마음을 쓸어내리는 순간도 있고 엄마의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글도 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눈물을 맺히게 만든 글들이었다.


좋은 딸이 아니라서, 하루에도 몇 번씩 죄송한 일을 하는 딸이라서. 지레 마음이 찔려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안 되는데, 엄마라서 툴툴거리고 엄마라서 짜증 부리고 엄마라서 내 감정을 한없이 다 토로했던 일들이 책을 읽으며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가 가장 행복해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 주는 일이라는 것을."


이 문장을 읽으며, 엄마가 행복해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주는 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좋은 딸이 되고 싶은 욕심 많은 딸의 길이라도 걸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다 무척이나 공감이 갔던 이야기가 있어 눈을 한참 동안 멈췄다. '조금 더 의연하게 살아가기 위해'라는 글이었다. 마치 내 생각을 들여다보고 쓴 글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슷해서 놀랐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어린 혜원이 친구들의 따돌림을 받고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속상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에 대한 글이다. 그 장면을 보고 "어, 어디서 많이 본 캐릭터네."라는 말한 작가처럼,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갈등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엄마의 대처 방법이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 엄마도,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의 박애희 작가의 엄마도, 우리 엄마도 비슷했다. 그리고 그 경험을 지나온 딸의 생각도 사뭇 비슷하지 않나 싶다.


바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하자 사는 일이 조금 편안해졌다. 기대하거나 함부로 예단하는 일을 조심하자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도 전보다 쉽게 느껴졌다. 그러지 못하던 어린 시절에는 작은 일로도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분노하고 화를 냈다. 그만큼 상처도 받았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을 것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믿는 것이 세상 쉬운 일이었던 난, 상처도 참 쉽게 받았다. 엄마는 그때마다 사람에게 일희일비하는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말을 해주시곤 했었다. 그때 나는 공감이 필요하다며 엄마의 말을 잔소리처럼 흘렸으나, 이제는 그 말을 하는 엄마의 마음에 공감하는 딸이 되었다. 그래서 작가의 글을 읽는데 마음이 시큰해졌다. 나도 이제는 사람에게 기대를 쉽게 하지 않는다. 함부로 예단하는 일을 조심하는 데는 여전히 서툴지만.


잠이 오지 않은 밤에 엄마의 안부를 물었던 작가의 글을 읽으며, 누구나 자신의 엄마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분명 박애희 작가의 엄마 이야기인데, 왜 나는 우리 엄마를 발견했던 걸까? 엄마라서 자신이 줄 수 있는 최선을 주었지만 그래도 부족한 듯싶어 미안해하는 엄마, 희생을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자식에게는 한없이 든든한 존재인 엄마, 자식의 꿈이 빛날 때 내 일처럼 기뻐해 주시는 엄마, 무심해 보였지만 사실은 무심한 것이 아니었던 엄마. 그런 엄마의 마음을 엄마가 없을 때야 비로소 깨달아 그리움으로 글을 썼다.


그리고 그리움과 슬픔의 끝은 절망이 아니라 다시 행복하게 살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이어진다.


"봐 봐. 다시 깨끗해졌지. 이제 또 네 발자국을 만들면 돼.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 시작이라고 생각해. 끝과 처음은 언제나 맞닿아 있어."


엄마를 그리워하며 썼던 글은 다시 그녀가 그녀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이 된다.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수많은 밤을 보낸 후, 다시 행복해지기로 다짐하는 저자의 말은. 이제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사라졌다는 표현이 아니라, 그 감정을 함께 가지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는 말로 느껴졌다. 매일매일 평범하게 느껴지는 엄마가 사실 당연하지 않고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렇게 책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한 난, 책을 다 읽은 날에도 리뷰를 쓰는 오늘도 엄마에게 무심한 딸이었다.


엄마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봐야겠다. 엄마가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걸 조금 더 잘 찾을 수 있는 나의 능력을 발휘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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