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검정이 좋아 살림어린이 그림책 49
미셸 파스투로 지음, 로랑스 르 쇼 그림, 박선주 옮김 / 살림어린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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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을 난 좋아하는 편이다. 고로 제목에 그리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궁금해서 표지가 예뻐서 읽었다.
《나는 이제 검정이 좋아》의 주인공 피에르는 자신의 꿈에 등장한 검정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엄마, 꿈에 여러 가지 색깔이 다 나오면 좋겠어요. 하지만 검정은 싫어요.


어둠이 싫은, 검정이 싫은 피에르의 마음과 달리 검정은 자꾸만 피에르의 삶에 곁에 다가온다. 무서울수록 더 가까이 다가오는 두려움은 피에르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듯. 책장마다 검은색이 가득 채워져 있다. 두려움의 대상, 피하고 싶은 색. 진짜 색깔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색. 검은색.


검정은 무채색이다. 한마디로, 채도가 없는 색. 빛을 모두 흡수하여 반사되어 나가는 빛깔이 하나도 없는 색. 그래서 어쩌면 색이 아닐지도 모르는 색. 실제로 검정을 두고 진짜 색깔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쟁을 벌여왔다고 한다. 두려움이란 감정과 색깔 논쟁의 중심에 놓여 있던 '검정'을 피에르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간다. 검정 역시 알록달록한 예쁜 색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검정은 빛을 어느 면에 받느냐에 따라, 때로는 반사되어 나가는 빛이 생기는 것에 주목해 다채로운 검은색을 작가는 보여준다.


까만 까마귀가 가진 독특한 빛깔, 아빠의 까만 수염이 다른 색으로 보이는 순간, 다크초콜릿이 가진 오묘한 빛깔 등에 주목한다. 왜 까만 게 까만 게 아닌지 피에르의 시선을 따라서 가다 보면, 내가 놓치고 있었던 오묘한 검은색의 세계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두려움이나 무서움의 대상으로 보았던 검은색을 닫아놓고 싫어하기 급급했던 피에르처럼. 우리도 두렵거나 무서운 대상이 있으면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곤 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이제 검정이 좋아》의 백미 (혹은 흑미)는 피에르 술라 주의 전시회에 가는 장면이다. 그곳에서 검정이 뿜어내는 수많은 색을 발견하는 장면은 참 아름답다. 그곳에서 피에르는 검정 안에 숨겨져 있던 비밀의 답과 더불어 검정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된다.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에서 또 다른 발견을 해내는 피에르의 순수한 눈을 통해 안정감을 찾아내는 과정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블랙 슈트, 블랙 미니드레스를 입었을 때 뿜어져 나오는 독특한 중후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에 익숙한 나에게 피에르의 시선은 낯설었다. 하지만 아이의 순수한 시선을 좇아 두려움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은 하나의 성장과정을 보는 듯 좋았다. 검정으로 표현했지만, 우리는 저마다 마음에 담고 있는 두려움의 실체가 있다. 그 두려움의 원인은 각자 다르겠지만, 그 깊이가 깊을수록 이를 딛고 일어섰을 때 볼 수 있는 세상은 더없이 눈부실 것임을 《나는 이제 검정이 좋아》를 보여준다.


피에르의 행동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으로 세상을 얼마나 좁게 볼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조금 더 세상을 넓게 보았을 때 더없이 아름다울 수 있음도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 눈을 여는 건 물리적인 눈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았을 때 열리는 것임을 보여준다. 마음을 활짝 열고 검은색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피에르처럼, 나 역시 2019년에 오기 이전에 보지 못했던 어떤 걸 발견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것을 보기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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