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나라의 앨리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8
루이스 캐럴 지음, 김민지 그림, 정윤희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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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자신의 소중한 어린 두 친구를 위해서 소설을 쓴, 루이스 캐럴. 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쓰고, 이어서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발표했다. 어렸을 때, 루이스 캐럴의 이야기를 읽으며 어떻게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나. 싶은 마음에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 보았던 앨리스는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흥미진진한 모험을 반복하지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나아가는 앨리스와 동행하듯 이야기 속을 거닐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재미있게 읽었던 감정은 나에게 남아 있지만, 왜 재미있었는지 어디가 좋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왜 어렸을 때 앨리스를 좋아했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감정을 남긴 사랑스러운 앨리스와 함께 이야기를 거닐기로 했다. 귀여운 단발머리를 한 앨리스를 만나러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책장을 넘겼다.

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앨리스는 단숨에 나를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초반부를 읽으며, 내가 간직하고 있는 느낌이 맞았던 걸까 의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집중해서 조금 더 읽었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진짜) 무대는 1869년 어느 크리스마스다. 앨리스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즐겁게 상상하며 논다. "올해 마지막 날,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앨리스는 좀처럼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하게 검은 고양이와 시간을 보낸다. 시계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에 간 앨리스는 이번엔 귀여운 검은 고양이 덕분에 거울 나라에 간다. 정확하게는 거울 속 세상이지만. 이상한 나라 못지않게 거울 나라 역시 신비로운 세계였다. 그리고 앨리스에게는 재미있는 세상이었다. 마치, 어느 한여름 날 낮잠이 준 달콤한 선물처럼 어느 크리스마스에 받은 선물 같은 곳이었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삽화도 한몫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감성이 가득 담긴 삽화는 연말에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하고 따뜻한 감성에 빠져들 수 있도록 손을 내밀고 있는 듯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느꼈지만, 루이스 캐럴의 작품은 그의 언어가 주는 독특한 유희적 표현을 읽는 즐거움이 크다. 소설 중간중간에 들어간 시는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물론, 영어의 언어유희를 모두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번역자는 세심하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한다. 특히 시를 앨리스와 가장 재미있게 주고받은 사람은 험프티 덤프티가 아닐까.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며, 덕분에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지만. 그 원인을 잘 모르는 그의 행동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상대는 그리 원하지 않지만 그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우선인 험프티 덤프티는 앨리스에게 "오직 널 즐겁게 해주기 위해 지은 시"를 이야기한다. 물론, 앨리스는 별로 원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상대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생각했다.

그전에 하얀 여왕과의 만남도 인상적이었다. "지난 일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정말 형편없는 일이란다."라고 말하는 하얀 여왕. 그녀에게 기억은 이전의 일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경험도 그녀에게는 기억이었다. 사라진 빨간 여왕을 대신한 앨리스는 기억을 오가는 여왕의 모순에 대하여 묻는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하얀 여왕의 반응은 앨리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별로 상관없다는 꽤나 고집쟁이였다. (사실, 루이스 캐럴의 소설에서 자기 고집이 없는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앨리스도 꽤나 고집 있는 소녀다.) 그렇기에 체스판 위와 같은 거울나라에서 계속해서 전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새로운 사람이 앞에 나타나면 마주하고, 흡수되거나 자신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하는 앨리스는 자신의 이름을 잃어도, 낯선 존재들과 만나도, 그리고 다시 자신의 이름을 찾아도, 무례한 사람을 만나도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도 앨리스는 앨리스였다.

여러분들은 꿈을 꾼 게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소설의 마지막 질문을 읽으며 알았다. 내가 먼발치에서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관찰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거울나라를 거닐던 앨리스 곁에 서 있었던 것을. 책을 읽으며, 일부러 순수하고 동심을 녹아낸 부분을 발견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눈에 들어오는 건 "So, What?"이라고 말하는 듯한 앨리스가 반문하거나 말하는 장면들이었다. 체스 두는 법을 모르는 난, 그저 앨리스를 따라 거울 나라를 다니기만 했는데도 즐거웠다. 똑똑하지 않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해내는 앨리스. 어른의 시선에서 볼 때 모자라지만, 거울나라에서 앨리스는 어른보다 어른스러웠다. 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견을 위한 여정을 계속하는 모습. 그 모습 덕분에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앨리스의 표현이 어리숙해 보이지 않고, 생각을 열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기억 속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읽다가 뭔지 모를 기분 좋은 포근한 감정을 또 한가득 받았다.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어떤가. 책 한 권을 읽고 마음이 포근해졌다면, 충분히 값진 독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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