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지음, 손성현 옮김, 김진혁 / 포이에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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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겨울은 나에게 도스토옙스키를 떠올리기 딱 좋은 계절이다. 겨울에 《지하생활자의 수기》,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을 읽기도 했고, 밝은 낮보다 깊은 겨울이 도스토옙스키와 더 잘 어울리기에. 짙은 밤이 긴 생각이 깊어지기 좋은 계절, 나에게 겨울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스토옙스키의 계절이다.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날씨가 겨울인 것도 한몫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도스토옙스키 책을 읽었다.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 이 책은 그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그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가 쓴 소설에 바탕이 된 세계관에 대한 책이다. 러시아 정교회, 즉 기독교적 토대에서 본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해석한 것으로, 책의 부제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이란 말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부제를 보고 겁을 먹지 않아도 된다. 기독교에 대하여 잘 몰라도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이해할 수 있듯이, 이 책 역시 기독교에 대하여 잘 모르더라도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이 많기 때문이다.


책은 총 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인간이란 무엇인가, 제2장 도스토옙스키의 사람들, 제3장 도스토옙스키의 관점, 제4장 이반 카라마조프, 대심문관, 그리고 악마, 제5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순차적으로 보다 깊이 있는 생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관통하는 질문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꼽았다. 그의 소설은 굉장히 불안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굉장히 우려스럽고 불안한 사람의 모습을 글 속에 담는다. 그런데 그 불완전한 존재에서 우리 자신을 만나게 된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지성인들이 인생 책으로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때로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성의 불가사의함이 기묘한 방식으로 돌출되는 모습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는데 거기에는 무언가 심히 우려스러운 것, 불안한 것(12-13쪽)"을 보고, 그 안에서 '나' 존재 깊은 곳에 숨은 질문을 꺼내게 만든다. 그 질문이 "인간이란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하나님의 존재", "세상의 부조리함" 등으로 이어진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인생을 발견하는 거야. 끊임없이, 영원히 발견하는 거지. 이미 발견된 것은 중요하지 않아." (19쪽)

도스토옙스키 소설 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대심문관에 대한 부분을 인상 깊게 읽은 난, 이 책에서도 4장을 주의 깊게 읽었다. 노문학 수업 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배웠고 이 책에서 언급하는 서술과 유사한 내용을 배웠다. 하지만 신학적인 측면에서 생각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 책의 분석과 해석은 뜻 깊었다. 특히 개인의 자유 그리고 교회,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대한 해석은 대심문관을 읽고 좀처럼 이해를 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아버지를 죽이는 살인을 교사한 이반과 악마에 대한 해석 역시 흥미로웠다. "대심문관의 비범한 지성은 믿음이라는 것이, 믿음이라 불리는 그것이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모험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 있으며, 그 존재 역시 이반으로 본 저자는 자연스레 세상 속에서 나약해질 수 있는 인간의 믿음을 논한다. 다만, "대심문관"의 논의를 깊이 있게 분석한 것에 비하여, 이반의 동생 알료샤의 행동과 '나약한 인간의 믿음'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점은 아쉽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자체가 미완의 소설이었기 때문에 저자의 해석에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심도 있는 분석 뒤에 마무리가 아쉬웠다.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라는 사람에 대한 책이 아니다. 소설을 통해 스스로(도스토옙스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내 마음에 혼돈으로 자리한 무언가를 즉시 하게 만든 소설가가 만든 세계와 그 관점을 논했다. 사실 "도스토옙스키에게는 "삶에 관한 새로운 직관"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책 마지막에 서 있는 사람은 혁명가도 아니고 평화주의자도 아니며, 특별히 순수하고 고귀한 영혼도 아니고 순교자나 성자도 아니며, 탐미주의자나 개혁가, 혹은 철저하게 회심한 사람도 아니고 - "오로지" 한 사람, "삶에 관한 새로운 직관"을 얻은 한 사람이다. (38쪽)". 그는 그 깨달음을 다른 사람(독자)에게도 동일한 경험을 하도록 이끈다. 그렇기에 그의 소설은 톨스토이 소설과 사뭇 다르다. 그는 소설 세계를 만든 소설가의 지위를 내려놓고, 마치 등장인물과 동등한 위치로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를 신학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한 개인으로 바라보면 타락하고 불우한 삶을 살았지만, 그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진정 어린 고결함과 구원이 무엇인지를 논했다. 이 사실을 모순으로 바라보지 않고 이를 신학적으로 해석하여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음을 이 책이 보여준다.


도스토옙스키 자체도 어려운데, 이 해설도 쉽지 않았다.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소설 속에 드리워진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궁금증을 한 번쯤 가졌을 것이다. 그 해석에 도움이 될 책이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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