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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아
오키타 밧카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1월
평점 :
만화책답게. 금방 다 읽었다. 하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코믹 에세이'라고 말하지만, 웃기보다 웃픈 상황이 반복되어 그런 건지. 니트로의 담담함이 참 마음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니트로의 담담함을 한층 끌어올리는, 투박한 그림체도 한몫했다. 제목이 자극적이라, 사람들이 오해를 가질지도 모르지만, 만화를 다 읽고 본 나로서는 이보다 더 적적한 제목은 없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니트로의 마음에 맴돌던 한마디가 바로 《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아》였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만화를 기대했다면, 이 만화는 절대로 당신의 기대에 부흥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장애를 겪는 니트로의 이야기는 《창가의 토토》의 토토처럼 우리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겨주지 않는다. 발달 장애를 겪은 만화가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세상 누구에게도 좀처럼 이해받지 못했던 시절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를 받을 수 없었던 그 상황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끌어안는 니트로의 행동에 괜스레 마음이 아릿해진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보다 아릿함이란 감정이 더 많이 감돌았던 만화다.
니트로에게는 타고난 '보이지 않는 장애'가 있었습니다. 아스피커증후군과 학습장애와 ADHD입니다.
니트로도 몰랐고, 부모님도 몰랐고, 학교에서도 몰랐던 그 장애는 니트로가 세상을 만나는 내내 함께 했다. 사람들과 다르게 세상을 보았고, 다른 세상의 흐름 속에 있었기에 니트로의 행동은 유별날 수밖에 없었다. 제멋대로이고, 규칙을 지킬 줄 모르고, 반성할 줄도 모르는 아이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니트로에게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계속해서 요구하는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니트로의 생각을 따라가면, 좀처럼 니트로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를 구하는 사람이 없다는 불편한 사실과 만날 수 있다.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아이라고 생각한 후 그저 멀리하거나 피할 뿐이었다.
나는 널 도통 모르겠다!!
니트로는 다양한 선생님을 만났고, 그 선생님은 갖은 방법으로 니트로를 힘들게 했다. 언어폭력, 물리적 폭력, 타인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거나, 소외감을 주는 등 갖은 방법으로 니트로에게 가했던 폭력은 결국 성추행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닿는다. 니트로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드는 생각까지 심는 것을 보고, 학교라는 공간이 때때로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수많은 학생을 교육해야 하는 선생님의 입장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을 내밀하게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한 아이를 그 아이 자체로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달라질 수 있음을 니트로는 보여준다.
니트로가 폭력에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누구도 니트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니트로가 살아온 시간은 니트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할 수 없도록 끊임없이 침묵을 강요했다. 누구도 자신의 말에 귀담아듣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던 건 다른 사람들의 침묵과 무관심이었다. 니트로 스스로 힘들지만, 그 이유를 나쁜 사람 탓으로 돌리며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는 니트로의 생각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그저 매년 유서를 반복해서 쓰는 것으로 그 시간을 버텨냈던 니트로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힘들게 만들었던 이유는 나 역시 침묵과 무관심에 익숙해진 어른의 시선을 가졌다는 생각에 놀라서였다. 만화를 읽으며 니트로의 시점이 아닌 다른 아이와 같은 시선에서 이 상황을 지나왔다면 "평화로운 학창시절"로 기억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저 반에 한 명쯤 있는 말썽쟁이로 기억할 뿐, 그 아이가 얼마나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뎠는지 헤아릴 마음의 여유가 나에게 없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발달 장애를 겪는 사람이 겪는 같은 세상 다른 시선을 담은 《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아》.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에 같이 아파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꾸만 까먹는 나에게 니트로의 이야기는 아름답지는 않지만, 진솔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점점 세상사에 시큰둥해져 버리는 때, 《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아》는 나의 어린 시절을 곱씹으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