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와 건자두
박요셉 지음 / 김영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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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에세이를 종종 읽고 있다. 소설가, 시인의 글과 달리 일상의 언어를 다룬 책이라, 다른 사람이 일상을 어떻게 느끼고 표현하고 나누려고 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모두가 다르게 표현한 것을 보고 놀라고, 나는 미처 정의하지 못한 그것을 명쾌하게 정리한 것을 보고 쾌감을 느끼곤 한다. 때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일 왠지 있어 보이게 쓰는 놀라운 글솜씨에 감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에세이를 간간히 집어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고 마음 속에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느낌을 자아내는 글들을 읽는 즐거움이 꽤 있다. 박요셉씨의 글은 일러스트레이터의 일상과 박요셉이란 개인의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2호선 노선 색과 닮은 《겨드랑이와 건자두》. 머리에 '?'를 남기는 제목의 이 에세이를 '강남역'을 오가며 다 읽었다. 가볍고 얇지만 커버처럼 단단한 《겨드랑이와 건자두》는 스스로 멘탈 금수저라고 생각하는 '박요셉' 씨와 묘하게 닮아 있다. 사진작가를 꿈꾸었지만, 우연한 계기로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그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팔 할 이상이 그에 대한 이야기이고 간간히 부모님, 아내와 모모(7살, 개)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특별함보다 잔잔함이 더 어울리는 그의 일상 속 단상은 짧은 글에 압축되어 있다. 그와 함께 중간중간 들어간 삽화는 글과 참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이메일에 대한 고찰, 설거지에 대한 시니컬한 한 문장, 이석증이 남긴 후유증, 일러스트레이터로 고단한 순간, 고독한 시간을 문득 깨달을 때 등등. 특별한 듯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백하게 담아낸 글들은 술술 읽힌다. 그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글이 있다. 바로, #기억의 무늬다. 


여행은 돌아온 시점부터가 시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필요한 기억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좋았던, 혹은 인상적이던 기억들이 서로를 끌어당겨 결국엔 완벽한 하나의 아름답고 단단한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 기억의 무늬를 하나하나 더듬으며 마음껏 탐하다 지루해질 즈음에 다시 떠남으로써 비로소 여행은 마무리된다.
어쩌면 여행을 떠난다는 행위 자체는 거대한 여행과 여행 사이에서 잠시 쉬어 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기억의 무늬 중에..




그리 길지 않은 글인데, 그 절묘함에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읽었다. 마치 그가 말한 여행처럼 글을 다시금 읽었다. 많은 글이 있었지만 나에겐 이 글이 《겨드랑이와 건자두》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글이었다. 문득 여행자를 빼고 '독서'를 넣어도 괜찮은 글이란 생각이 들만큼 좋았다. 글을 살짝 바꾸어 써보면 아래와 같다. 꽤 그럴싸해진 글에 미소가 지어졌다.


독서는 돌아온 시점부터가 시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필요한 기억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좋았던, 혹은 인상적이던 기억들이 서로를 끌어당겨 결국엔 완벽한 하나의 아름답고 단단한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 기억의 무늬를 하나하나 더듬으며 마음껏 탐하다 지루해질 즈음에 다시 읽음으로써 비로소 독서는 마무리된다. 어쩌면 책을 읽는 행위 자체는 거대한 책과 책 사이에서 잠시 쉬어 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겨드랑이와 건자두》 중 #기억의 무늬의 글을 살짝 바꾸어 봄.)


누군가의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를 읽는다는 건, 어쩌면 내 일상으로 다시금 돌아오는 일일지도 모른다. 별것 아닌 누군가의 일상에 밑줄을 긋는 일을 통해 내 삶의 자리를 확인할 수 있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을 위해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난 에세이를 지하철에서 읽곤 한다. 깊은 몰입을 요구하지도 않으며, 지금까지 오기까지 일상의 기록을 읽으며 잔잔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음을 파고드는 글 하나, 그림 하나 발견하면 괜스레 미소가 지어질지도 모른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하여 그 의미를 내 안에 남기는 건 불가능하다. 그저 나에게 좋았고 인상적이었던 기억을 남기는 정도면 족하다. 여행에 대한 글에서 독서를 생각한 것처럼. 그런 여유로운 독서가 필요할 때, 읽기 좋은 책이다. 작은 가방에 들어갈만큼 아담한 책에서 나에게 딱 맞는 아담한 생각거리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리는 순간순간 찾아오는 빛나는 순간들은 한두 장 그려서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 많이 그려보세요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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