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기 전 나의 이야기
카타리나 베스트레 지음, 린네아 베스트레 그림, 조은영 옮김 / 김영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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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겪지만,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은 시절이 있다. 배로 엄마 뱃속에 있을 때다. 서로 다른 두 세포에서  태아가 되고, 아기가 되기까지 그 과정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하나의 세포가 되어, 어떻게 인간이 되는지. 그 과정에 대하여 과학 시간에 잠깐 배울 뿐,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 나의 이야기》는 임신에서 출산까지 모든 과정을 심플한 일러스트와 생물학적 설명을 더한 책이다. 그렇다고, 마냥 어려운 건 아니다. 4주에 3밀리미터 참깨 한 알 크기에서, 5주 0.5센티미터 완두콩 크기로 자라, 9주 5센티미터 딸기 크기로 쑥쑥 자라는 태아 일러스트와 함께 다음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도 함께 자라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에 대하여 '임신', '출산'이란 키워드만 검색창에 쳐도 저마다 특색이 담긴 정보가 쏟아져 나오지만, 존엄한 생명을 전하는 책은 많지 않다. 좀처럼 엄마 뱃속에서 있었던 10개월에 대하여 알아보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초보 부모가 되기 직전 혹은 직후에 읽는 출산 백과사전에 나와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시간에 태아가 어떻게 자라는지 보다 그 자라는 태아에게 필요한 도움이 무엇이고, 해를 끼칠 수 있어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집중할 뿐. 그 과정 자체에 집중한 글을 찾아보기는 힘들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 순간의 과정을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쉽게 생기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삶의 맨 처음. 중요하지 않을까. 그보다, 참깨 한 알만한 작은 존재가 어떻게 들어있을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만한 작은 자궁안에, 3킬로그램 크기의 아기로 자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호기심이 생기는 대목이다. 이 호기심이 《내가 태어나기 전 나의 이야기》가 태어날 수 있었던 작은 불씨였다.


책은 개월 수나 임신 주수에 따라 나누어져 있지 않다. 정량적인 시간을 기준으로 나누지 않고, 태아가 조금씩 달라지는 그 과정에 따라 목차를 나누었다. 목숨을 건 경주, 침입, 몸의 윤곽, 뼈대 그리고 팔과 다리, 나는 남자일까 여자일까?, 노폐물 배설과 수분 조절, 감각 물에서 공기로 등등. 목차를 읽는 순간, 태아가 어떤 변화를 거치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엄마 뱃속에 있는 내가 어떤 변화 과정을 거치는지 다룬다. 종종 등장하는 다른 동물들과 생물학에 관한 이야기가 낯설기도 하지만, 그런 건 해설이라고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읽어도 좋지 않을까. 나의 시작이 어떠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읽으면 된다. "나와 여러분의 관한 모든 것"을 말했다는 에필로그처럼, 나의 이야기를 하듯 쓰여있어서 이론만 가득한 과학 책과 달리 쉽고 흡입력 있게 '나의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었다. 책 속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나'이니까 말이다. 정확하게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나'이지만.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목차이면서 글 자체였다. 지나온 시절의 나, 태아의 시선으로 서술한다는 점이 글을 읽으며 확연히 느껴졌다. 나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위해서 초파리의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대왕고래의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아직 태어나기 전의 아기,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기이기 보다 하나의 생명체로 독립성을 인정한 듯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부분은 '혹스 유전자'에 대한 부분이었다. 쉽게 말해 혹스 유전자는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도록 조절하는 유전자다. 인간의 존재가 어떤 특별한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에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유전자를 어떻게 사용했기 때문에 인간이란 종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초파리와 인간이 반 이상의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초파리와 인간은 엄연히 다를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마치 레고 블록으로 집도 만들고, 다리도 만들고, 성벽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혹스 유전자가 나라는 존재가 인간이란 종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데 역할을 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물론 초파리에 대한 설명과 각종 생물학자의 이야기를 읽는 건 쉽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나를 이해하고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생명의 존엄성보다는 사람이란 존재가 태어나기까지 뱃속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고,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떤 생물학적 진화 과정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다소 딱딱할 수도 있지만, 재미있는 예시와 갖가지 생명체와 우리를 비교하며 한 설명이 꽤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 나의 이야기》는  소중한 나란 존재에 대하여,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은 책이었다. 생물학 이야기라고 치부할지 모르지만, 막상 읽어보면 10달이란 긴 시간에 얼마나 신비롭고 귀한 생명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지 알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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