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되었지만 잘 살아보겠습니다
니시다 데루오 지음, 최윤영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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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 알몸에 빈손으로 왔으니 죽을 때도 빈손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념이나 증표로 소중하게 여겼던 많은 메달과 상장도 인생이 이 단계에서는 별 의미가 없구나 싶습니다.
눈을 감을 때는 아내와의 즐거웠던 추억이 담긴 사진 몇 장만 있으면 충분할 테니까요.
_ 69쪽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운 이유, 아마 그곳에 내가 사랑하고 나를 반겨주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가 갑자기 가족과 영원한 이별을 하고 혼자가 된다면 어떨까. 느닷없이 다가오든, 예고를 하고 다가오든 죽음은 늘 마음을 서늘하게 가라앉게 만든다. 70년이란 시간을 살았지만, 아내와의 이별은 역시 어려웠다. 살아온 시간이 길다고 하여 이별에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혼자가 되었지만 잘 살아 보겠습니다》의 저자 니시다 데루오는 일흔 쯤에 아내와 이별을 했다. 췌장암을 앓았던 아내는 약 1년간 이별 기간을 가진 뒤,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혼자가 되었지만 잘 살아 보겠습니다》는 일흔에 아내를 떠나보내고 오랜만에



혼자 살기 시작한 어느 할아버지의 일상을 담은 책이다. 이별 기간 동안 계속해서 혼자 지내는 법을 연습했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해서 그에게 찾아온다. '오늘은 뭘 먹지?', '겨울옷은 어디에 있지?', '출장 준비는 어떻게 하지?', '청소기 먼지 통은 어떻게 갈지?', '나의 마지막은 어떻게 준비하지?'등등 시시콜콜한 일상 속에 생기는 문제부터 마음 울적 거리게 만드는 일까지. 그의 하루하루는 새로운 문제와 어려움의 연속이었고, 그 끝에는  《혼자가 되었지만 잘 살아 보겠습니다》라는 다짐이 담겨 있었다.



이 세상에는 절대적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상대적으로 행복이라 느끼느냐 불행이라 느끼느냐의 문제이지요. 아내와의 생활이 풍요로웠던 만큼 아내가 없다는 상실감은 매우 큽니다. 하지만 이 시련은 결국 저세상에서 재회했을 때 아내에게 칭찬받는 순간의 큰 행복을 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_ 170-171쪽


그의 글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담겨 있다. 자신이 얼마나 집안일에 무지했는지에 대한 깨달음,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찾아오는 설렘,  은행에서 돈을 찾는 법을 몰라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만큼 살뜰하게 챙겨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 "멋지고 당당하게 살아요"라는 유언을 남긴 아내의 말을 따라 하루하루 열심히 살기 위한 다짐.. 그 감정들이 글 곳곳에 담겨 있어 읽으며 아련함과 위로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책을 읽다가 그가 하나하나 익히기 시작한 일들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그럴 수 있지만, 계절 별로 옷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현금 자동입출금기 사용법도 모르고, 청소기나 다라미 사용법을 모르는 건 조금 너무하지 않나 싶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안과 의사이자, 교수로 바쁜 시간을 보냈기에 집안일을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겼다. 가사에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던 터라 그의 홀로서기는 힘들었다. 우리 세대에선 저자와 같은 일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때 그렇게 시절을 보냈던 걸 감안해 바라보면 어떨까. 함께에서 혼자가 되는 건 더 힘들고, 덜 힘든 문제를 떠나 한 사람의 존재를 잃은 공허감이 감도는 건 동일하기 때문이다.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곁에 남겨두고 하루하루를 잘 살기 위해 살아가는 저자의 이야기가 여느 에세이들과 다른 감촉이 전해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자립이란 수동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를 상상하면서 죽음과 대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_ 204-205쪽


아내를 떠나보낸 후 1년 반이란 시간을 보내고야 저자는 '자립'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늦은 깨달음일까? 그렇지 않다. 자립은 부모의 품에서 독립하는 순간에 한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홀로서기는 삶의 평생에 걸쳐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암으로 아내를 보낸 후, 죽음 이후에 자신의 자취를 세상에서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저자는 인생의 마지막 '홀로서기'를 목전에 두었다. 일상생활을 혼자 감당하는 것만이 자립이 아니라, 유한한 인간의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감당할지를 생각하는 것 역시 자립일 수 있다. 죽음은 누군가와 함께할 수 없고, 결국 홀로 맞이해야 하는 문제이니 말이다. 그 홀로서기는 집에 틀어박혀 떠나간 사람들을 헤아리며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 그리고 감정의 균형을 잡아,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에서 달성할 수 있다.



 《혼자가 되었지만 잘 살아 보겠습니다》는 아직 내가 마주한 경험이 없는 슬픔과 그 슬픔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을 극복한 이야기였지만, 그 안에서도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곱씹을 수 있는 좋은 에세이였다. 나이를 떠나 삶의 보람을 찾아 전력을 다하는 건 어느 때나 필요하니 말이다. 사람마다 모습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며, 삶이 다르기에  《혼자가 되었지만 잘 살아 보겠습니다》를 읽고 난 뒤에 오는 느낌은 읽는 이의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가 다시 아내를 만나기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게 주어진 삶을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기록한 할아버지의 이야기에서 자신이 앞으로를 살아가며 무엇이 필요한지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  《혼자가 되었지만 잘 살아 보겠습니다》를 읽고, 이 생각 하나는 같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할아버지의 하루하루를 응원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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