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잠시 멈춤 - 나를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한 여자들을 위하여
마리나 벤저민 지음, 이은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쉰을 앞두고 몇 달을 몇 주처럼 보내면서 삶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불안감이 커졌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충격적일 만큼 엄마나 아버지와 비슷해 보였다. 머리를 좀 기르면 늘어진 이중 턱을 비롯해서 아버지와 꼭 닮아 보였고, 머리를 자르면 곧바로 엄마의 얼굴이 나타났다.


덜컥, 겁이 났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알고 있던 엄마의 얼굴에서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딸인 엄마가 할머니를 닮는 건 당연하다. 그런 당연한 이유로 내가 겁을 먹은 건 아니다. 엄마의 얼굴에 전에 보이지 않던 '나이'가 선명해져서 겁이 났다. 여전히 누구보다 아름답고, 내가 조금 더 닮지 못한 것이 늘 아쉬운 우리 엄마도 어느새 '중년'이란 단어에 들어선 것이다.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따금 까먹는 딸인 난, 중년이란 시간에 접어든 엄마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책을 한 권 읽었다. 《중년, 잠시 멈춤》. "인생을 종 모양의 오르막과 내리막에 비유한다면 중년기, 그 정점에 닿아 있는 엄마와 아직도 인생의 오르막을 걷는 나의 시선을 맞추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중년, 잠시 멈춤》은 마흔아홉에 갑작스럽게 맞이한 완경(폐경)과 그 이후에 몸에 일어난 변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고백한 책이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몸에 일어난 변화를 시작으로 생각에 파고든 변화를 저자인 마리나 벤저민은 섬세하게 기록한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글을 써온 그녀의 글솜씨는 《중년, 잠시 멈춤》에서 빛을 발한다. 중년 여성에 대한 다양한 의학 연구 결과, 역사적으로 중년의 의미 변천 과정 그리고 소설, 에세이 등 문학 작품 속에서 발견한 중년 여성의 삶에 대한 단상을 모아 '마리나 벤저민'의 어조로 풀어놓았다. 마흔아홉에서 쉰으로 넘어가는 동안 저자는 작가와 저널리스트 직업인으로써 자신과 한 아이의 엄마로써 자신, 배우자로써 자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딸로서 자신을 찬찬히 돌아본다.


처음엔 몸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어떻게든 밀어냈지만 이내 인정한다. 그 계기는 한밤중 화장실을 가다가 넘어진 일이었다. 별것 아닌 사고로 넘기지 못하고, 이를 자신의 삶이 이제 내리막의 전조를 느낀다. 그리고 막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중년 역시 삶의 연속 중 하나의 단계임을 받아들인다. 처음에 넘어지는 것 falling과 쇠약해지는 것 failing이 같은 듯하여 불안했던 저자는 두 단어에 철자 하나로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난 뒤, 저자의 진솔한 말은 마음에 닿는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살피고 받아들이는 순간에 우리는 나이 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수혜자가 된다. 그러면서 시간을 정복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은 사실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시간을 이길 수는 없지만, 시간 속에서 주인공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말한다.

저자에게 중년의 시간에서 주인공이 된다는 건, 이전까지 삶을 내려놓거나 이를 뒤로한다는 뜻이 아니다. 남편, 자식, 부모를 뒤로하고 '나'에게만 집중하는 것과 다르다. 이 역시 하나의 방식일 수 있지만, 저자는 "나는 눈에 띄는 변화는 별로 없어도 새로운 문턱에 다다른 나 자신의 색다른 부분들을 통합하고, 오래된 것들을 다시 배치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혁명과 같은 재탄생을 원했다."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약해지는 몸, 사랑이나 우정에 대한 열정도, 삶에 대한 치열함도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이렇게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어느 한쪽에서만 바라보기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재배치하며 재탄생을 꿈꾸고 있었다. 중년은 또 다른 시작으로 새로운 목표를 세운 후 달성하기보다 한결 자유롭게 자신의 자아를 풍요롭게 만드는 게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이 아닐까?


세상에 대한 경험이 풍부해지면서 그런 경험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쉰에 된 내게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의 시간이 남았을지 모른다. 나는 내 인생의 후반기를 움켜잡기로 결심했다.


 《중년, 잠시 멈춤》의 시작은 중년을 맞이한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은 전혀 달랐다. 저자 마리나 벤저민과 우리 엄마는 다르다. 그녀의 생각과 우리 엄마의 생각은 당연히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으로 난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신 《중년, 잠시 멈춤》은 '엄마와 대화'를 열어주는 책이었다. 중년이란 시간을 맞이한  한 사람으로서(엄마)의 이야기를 이끄는 책이었다. 이전에는 들을 생각을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중년, 그 시간을 걷는 엄마가 저자 마리나 벤저민과 다르지만 자유로운 '인생의 후반기'를 즐기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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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4 16: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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