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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기분
김종완 지음 / 김영사 / 2018년 10월
평점 :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 있다. 포근함을 느낄 수 있어서, 설렘이 느껴져서, 상쾌함이 전해져서.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분명 어딘가 들어갔을 때 기분 좋았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카페, 매장,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혹은 내 방 어디든,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곳. 그런데 이와 같은 공간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떤 이의 고민과 손길이 닿았기에 만들어진다. 노력 없이 좋은 공간은 태어나지 않는다. 누군가 공간에 숨을 불어넣기 때문에, 그곳은 누군가 '다시' 방문하고 싶고, 온전히 향유하고 싶은 공간이 된다. 건축가나 실내건축 디자이너 대신 스스로 붙인 "공간전략디자이너" 김종완 씨는 바로 이와 같은 일을 한다. 공간에 숨을 불어넣는 일, 어떤 곳을 어떤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만드는 일을 한다.
"너는 한 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악기를 지휘하는 사람이다."
프랑스에서 대학을 졸업과 동시에 입사했던 회사의 사장님은 김종완 디자이너를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발전했다는 맥락에서 전한 이야기였다. 그의 책 《공간의 기분》을 통해 느낀 그는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아닌 공간이 사람에게 전하는 모든 분위기를 지휘하는 사람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았다. 《공간의 기분》은 김종완 디자이너가 <종킴 디자인 스튜디오 Jongkim Design Studio>에서 실시했던 16개의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다. 공간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었던 기록이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고 남겼는지 솔직하게 고백한 글이다. 글과 사진 그리고 스케치가 보여준 공간은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독특하고 매력적인 공간 속에 주인공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드러내도록 이끌기 위해 어떤 시도가 있었는지, 그 시도를 이끌어낸 디자이너로서 김종완 씨가 무엇을 했는지가 글 속에 더 많이 묻어 있다. <종킴 디자인 스튜디오 Jongkim Design Studio>의 포트폴리오가 아닌가 싶었지만, 작품 포트폴리오라는 느낌보다, 그 공간을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이야기가 있었고,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녹아든 일기장 같았다. 《공간의 기분》은.
운동선수들이 시즌에 돌입하기 전 쉬면서 준비하는 기간을 '프리시즌'이라고 한다. 카페 <프리시즌>은 그 기간처럼 사람들이 쉬면서 다음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김한엽 대표가 지은 이름이다.
개인적으로 《공간의 기분》을 보다가 반가운 장소가 나왔다. 카레 <프리시즌>이다. 내가 종종 애용하는 카페에 손길이 닿았었다니. 새삼 놀랐다. "골목골목 녹아 있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담벼락 사이로 오가는 소리들과 좋은 추억, 모두가 꿈꾸는 장소, 그런 이미지가 그려졌다."라고 말하며, 만들어진 공간을 직접 방문했기에 디자인에 공들였던 부분들을 떠올렸다. 종종 친구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던 그 카페는 고단했던 하루에 쉼을 서로에게 선물하는 곳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딱 맞는 이야기라서 읽으며 더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기억에서부터 취향이 만들어진다."
16개의 공간은 분명 모두 달랐다.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달랐고, 그 장소에 담고 싶은 이야기가 달랐고, 그곳을 공간으로 만드는 디자이너의 의도가 달랐기에 당연한 결과다. 100% 클라이언트에게 맞추어, 그 공간보다 그 공간을 채울 제품이 주목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포트폴리오에서 상업적인 느낌이 아닌 예술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공간에 그 공간만의 이야기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요리를 통해 서로 간의 친밀도를 높이고 영감과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문학, 예술, 사람과의 소통이 있는 공간요.", "'라이프스타일을 담자', '<구호>의 집을 형상화하자'" 등 클라이언트는 요구하는 방향과 그 방향을 따라가며 공간과 브랜드를 부각할 수 있도록 돕는 그의 철학이 공간에 담겨 있었다. 그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자신의 독특한 아이디어와 철학을 물리적 공간으로 구현하기 위한 노력했다. 레스토랑을 디자인할 때는 요리를 맛보고, 단독 건물이 아니라면 백화점, 주변 환경과 어떻게 조응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 덕에 모든 공간은 저마다 매력을 지닌 곳으로 태어났다.
방문한 사람은 "여기 되게 분위기 좋다."라고 한 마디를 했을 곳에 이렇게 많은 이유와 의도가 담겨 있다니. 《공간의 기분》 을 읽다 보면, 나를 괜스레 기분 좋게 만든 공간을 한 번 더 들여다볼 여지가 살짝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