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1~2 세트 - 전2권
케빈 콴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덧붙여 영화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 (전권)은 책 소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신데렐라 스토리에 막장이 적당히 섞인 것 외에 들여다볼게 많은 재미있는 소설이다. 싱가포르의 베일에 가려진 0.01% 부자의 삶을 다룬 작품답게, 무대는 싱가포르지만 영국, 호주, 미국, 말레이시아, 중국을 오가는 스케일과 각종 명품 브랜드와 산해진미는 글로 쓰인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적절히 녹아든 그들만의 은어(진짜 그들만의 은어인지는 알 수 없지만.)와 사람들에게 어떻게 과시하는 지 소설은 사건 외에도 읽는 이로 하여금 달라지는 장면을 계속해서 상상하는 즐거움이 크다. 그래서 읽다 보면, 괜히 영화로 이 모든 걸 어떻게 구현했을지도 궁금해진다.


「이쪽은 상황이 달라. 아무리 우리 문화가 발전했다 해도 여전히 여자들은 결혼에 대한 압박을 엄청나게 받지. 이곳에서는 여자가 전문적으로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기 전까지는 완벽하지 않은 거야. 왜 아라민타가 그렇게 결혼하려고 안달이었을 것 같아?」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 2, 21쪽


성별에 따라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나누어 공부시키고, 일을 하고, 정략결혼으로 막을 내리는 삶이 상식이라고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레이철은 한 부모 가정에서 자라, 공부만 잘한 사람일 뿐이었지만, 이에 자존감이 약해지지 않는 레이철의 모습은 멋있었다. 확실히 레이철은 싱가포르 상위 0.01%에서 마주한 여느 여자들과 비교해 여러모로 굉장히 달랐다. 그리고 이렇게 남다른 레이철은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를 만났듯이, 싱가포르 최상위권 집안의 니컬러스 영과 사랑에 빠진다. 다아시는 고모 외에 특별히 엘리자베스와 사랑을 방해하는 가족들이 없었지만, 니컬러스 영은 달랐다. 전 세계에 레이철과 닉의 사랑을 막기 위해 안달인 가족과 싱가포르에 닉의 신부가 되고 싶은 여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모든 걸 모르게 레이철이 닉의 가족들이 있는 그의 고향 싱가포르에 간다는 데 있다.


「바로 그 점이 문제예요, 엄마. 이제야 드는 생각인데 닉은 저에 대해, 그리고 우리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요. 근데 저는 그의 가족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네요.」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 1, 110쪽


그저 닉이 열심히 공부하고 매력적인 뉴욕대 역사학 교수라고 생각한  레이철은 그가 자신과 비슷한 심하면 조금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라는 가정은 했지만, "신보다 부자"라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크레이지 리치일 거라는 가정은 없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 특히 그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자신을 극도로 싫어하며, 떼어놓기 위해 정말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건 레이철뿐만 아니라 닉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후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모두가 상상하는 대로다. 닉과 레이철 사이를 훼방 놓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내용의 연속이다. 한마디로 막장 드라마의 파격적인 전개가 장마다 펼쳐진다. 호텔에 죽은 생선을 가져다 놓거나 말로 사람을 비꼬거나 레이철이 알 수 없는 닉의 과거를 말하며 속을 긁는 등. 닉이 있을 때와 닉이 없을 때 행동을 순식간에 바꿔간다.


닉의 가족들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엄청난 사람들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왜 그는 이 상황이 닥치기 전에 그녀에게 마음의 준비를 조금 더 시켜 주지 않았을까?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 1, 277쪽


파격적인 전개에 한 축을 담당하고, 푹 빠져들 수 있게 만드는 건 결혼을 생각하는 단계인 레이철과 닉의 이야기와 동시에 진행되는, 5년 차 부부 아스트리스 렁과 마이클 테오의 이야기다. 영 가문에서 손에 꼽히고, 전 세계가 주목했던 만인의 연인이었던 아스트리스 렁은 군인 출신의 IT 업계에 종사하는 마이클 테오와 결혼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마이클 테오가 레이철과 같은 입장이었고 닉과 같은 아스트리스와 결혼한 후 어떤 결혼 생활을 했고, 현황을 보여준다. 마치 닉과 레이철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일을. 큰 생각 없이 초상류 사회에 들어갔다가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한 값을 톡톡히 치르게 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이클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안쓰러운 건 아스트리스였다.


레이철만큼이나 아스트리스 역시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레이철과 또 다르게, 강인한 성격과 미에 대한 탁월한 감각 그리고 자기 신념이 분명한 아스트리스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를 배려하며 어떻게 관계가 틀어질 수 있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이는 닉 또한 마찬가지였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이해한 닉은 레이철이 어떤 일들(막장 드라마에서 봤을 법한 일)을 겪었는지 알고, 이별을 말하는 레이철을 차마 붙잡지 못한다. 흥미로운 건, 이 일이 싱가포르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 전후로 벌어진다는 점이다. 결혼식이 화려해지면 화려해질수록 두 커플의 관계는 더 깊게 멀리 벌어진다. 


「저는 오늘 밤에 보석 장신구를 단 하나도 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텅가 사람으로 태어났어요.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제 자신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전혀 없답니다.」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 2, 191쪽


마치 실제로 채울 수 없는 재력의 차이만큼이나, 관계가 어긋나 벌어지기만 한두 커플의 이야기가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의 줄거리다. 이미 굉장한 부를 가지고 있지만, 더 큰 부와 명예를 가진 또 다른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사람이나, 자신과 모든 사라 사이를 구별 짓는 사람들의 태도는 흥미롭다. 레이철의 표현처럼, 「나도 이 사람들이 누군지는 전혀 모르겠어.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해. 이 사람들은 신보다도 부자야.」. 신보다도 부자인 이들의 행동은 그리 고상하지 않다. 싱가포르 초상류 사회가 배경이기에 검색하지 않으면 가늠조차 되지 않는 화려한 일상생활과 함께 자신의 우월감을 저마다 방식으로 나타내는 모습은 꽤 인간적이다. 말도 안 되게 화려한 파티를 즐기며 흥청망청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는 렁가, 영가 사람들의 태도는 부자들 사이의 또 다른 위계질서를 세운다. 돈은 기본이고 명예, 가문을 내세워 구별짓고, 자신들보다 가난하고, (그들이 생각하기에) 한미한 가문의 사람들을 철저히 무시한다. 하지만 반대로 자식 세대에서 데리고 온 이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한방 먹기도 한다. 키티 퐁의 파격적인 행보에 놀라는 그들과 달리 깔깔 웃었다.


「내게는 의미가 있어. 닉, 나는 이 문제를 끝없이 고민해봤어. 처음에는 내 과거에 대해 알게 돼서 충격을 많이 받았지. 우리 어머니의 거짓말에, 내 이름도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에 상심이 컸어. 내 정체성 자체를 빼앗긴 기분이었어. 그러다 곧 깨달았지 …… 그런 것은 다 중요치 않다고. 이름이 대체 뭐라고? 우리 중국인들이나 집안 성씨에 집착이 심하지. 나는 나만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내가 일군 나라는 사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 2, 327쪽


엘리자베스와 묘하게 닮은 레이철이 멋진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자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놓치지 않는 데 있다. 그녀는 냉정하고 이성적이게 상황을 즉시 하고, 자신의 삶에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녀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두 사람이 얼마나 통했는지 차근차근 나오지만, 싱가포르에서 보낸 일련의 사건 끝에 그녀는 닉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고는 당황하며 깨달았다. 실비아의 말이 맞았다. 방금 전까지 그녀와 함께 여섯 시간 내내 심도 있게 대화한 이 남자,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 중 하나의 가사를 전부 아는 이 남자, 그녀의 옆에 서 있는 이 남자를 보니 처음으로 진짜 자신의 남편감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난생처음으로 남편감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 남자라도 말이다.


게다가, 때때로 자신의 올바르지 않은 판단을 하면 이를 인정하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한 사람의 의견을 적극 수용한다. 또 크레이지 리치들 사이에서 좀처럼 나누기 힘든 진심이 담긴 '제대로 된 대화'를 끌어낼 줄 안다.  「한 부모 가정에서 크면…… 특히나 모두들 그림처럼 완벽한 가족의 모습을 제시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곳에서 크면 정말 주변과 이질감을 느끼게 되지. 나는 언제나 어머니를 너무 일찍 여읜 여자애였어. 하지만 있지, 그것도 그 나름의 이점이 있어. 그 덕에 나는 세간의 들끓는 이목에서 벗어날 수 있었거든.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뒤, 나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학교로 보내졌어. 거기서 대학까지 다녔고. 그래서 내가 남들과 조금 다른가 봐.」  레이철은 자신과 비슷한 결핍을 가진 사람에게 적당히 호감을 표시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다.  닉을 빛나게 만들 부분보다 레이철이 빛날 대목이 더 많기도 했지만, 닉보다 레이철에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절대 시도를 포기하지 않겠지. 그는 극복 불가능한 상황을 가지고 뭐든 가능하게 만들 거야.」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 2, 340쪽


로맨스 소설답게 결국 레이철은 가장 레이철답지 않은 결정을 내리지만. 언제든 레이철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 정확하고 신속하게 그 불행의 순간에서 빠르게 깨고 스스로 행복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기에. 꽉 닫히지 않은 결말이 마음에 든다. 레이철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바깥에서 보이는 화려함의 이면을 모두 본 레이철이 그 불빛만 쫓아 들어가지 않을 사람으로 그린 점이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덧붙여 영화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 (전권)은 책 소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신데렐라 스토리에 막장이 적당히 섞인 것 외에 들여다볼게 많은 재미있는 소설이다. 싱가포르의 베일에 가려진 0.01% 부자의 삶을 다룬 작품답게, 무대는 싱가포르지만 영국, 호주, 미국, 말레이시아, 중국을 오가는 스케일과 각종 명품 브랜드와 산해진미는 글로 쓰인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적절히 녹아든 그들만의 은어(진짜 그들만의 은어인지는 알 수 없지만.)와 사람들에게 어떻게 과시하는 지 소설은 사건 외에도 읽는 이로 하여금 달라지는 장면을 계속해서 상상하는 즐거움이 크다. 그래서 읽다 보면, 괜히 영화로 이 모든 걸 어떻게 구현했을지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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