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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누가 할래 - 오래오래 행복하게, 집안일은 공평하게
야마우치 마리코 지음, 황혜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설거지 누가 할래》는 소설가 야마우치 마리코가 쓴 에세이다. 주제는 동거에서 신혼생활까지. 남과 여가 만나 함께 생활하며 마주할 수 있는 문제를 솔직하게 고백한 글이다. 그리고 그 주제는 함께 ‘생활’하며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가족이 아닌 남과 삶을 공유하고, 연인에서 가족이 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한다. 저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한쪽 성의 입장만을 다루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 챕터가 끝나면 그녀의 남자친구이자 남편의 변이 있다. 저자의 이야기를 한참 읽다가, “아. 같은 상황을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구나.” 싶어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가 재미있게 보았다고 말한 <최고의 이혼> 구성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 저자 부부가 드라마 속 부부와 닮았다고 한다.)
서로 다른 사람이 삶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가족이 된다는 건 룸메이트를 구하는 것 이상의 부딪힘 요구한다. 생활 패턴과 가치관, 성격, 주변 환경 등에 따라 개개인은 모두 조금씩 혹은 많이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나에게 당연한 일이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고, 상대는 배려한 것이지만 나는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특히 이 일이 자주 마주치는 일이 “집안일”이 아닐까. 같이 생활하며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 집안일 말이다. 공평하게 나눠야 하는 데 좀처럼 공평하게 나눌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저자도 사귈 때는 미처 몰랐는데, 동거를 시작하며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한다. 크게 집을 알아보는 것이나, 자신의 서재 가구 배치를 바꾸는 것부터 사소하게 TV 시청에 이르기까지. 생각지도 못한 데서 자꾸만 서운하고 불만 사항이 나오니, 시작은 동거&신혼 에세이였지만, 신랄한 비판을 겸한 남편 관찰기라는 생각마저 든다.
"자, 그럼 천신만고 끝에 찾은 소중한 남자 친구를 '괴물'이라고 부르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경위를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
"이제부터 지속적으로 아내와 남편 모두 행복한 집안일 분담 방법을 찾아야겠다."
하지만 어긋나기 시작한 원인부터, 결국 남과 여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가기까지. 글은 보여준다. 불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까지 내가 이야기해야 하나"싶은 사소하고 치졸한 듯싶어 꾹 참았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과정이 소중하다. "내가 참아야지", "이런 건 이야기하기는 좀 그래"라고 생각한 것을 꺼내는 것은 사실 누구나 어렵다. 여자는 여자라서, 남자는 남자라서 말이다. 그리고 가족이 되기 직전이라서, 가족이라서 생기는 사소한 일들, 지나친 일들을 저자는 거침없이 꺼낸다. "모름지기 친한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감사'나 '미안함'을 표하는 예의를 동거라는 공동생활 속에서 유지한다는 게 남자 친구에게는 정신 수양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드는 상황이나, "핸들을 잡고 운전하는 남자 친구를 보고 '행복해'라고 말했던 순간"을 곱씹는다.
그녀가 이야기를 마치면, 남자 친구였고 남편이 된 그도 변론을 한다. 물론 그녀에 비해 목소리는 작지만, 여자친구였고 아내인 저자의 말에 충격도 받고, 섭섭해하고 오해의 여지는 거침없이 말한다. 가령 집안일을 분담하는 일에 대해, 여자친구의 말과 달리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며, 무언가 느끼지만 이를 말하기 어려웠음을 토로한다. 결국 두 사람은 순간순간 느꼈던 감정을 서로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났고 점점 "여자들이 도대체 무엇에 화를 내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완전히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기까지는 미치지 못했음을 저자의 남편은 고백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남 간의 골을 대화로 메워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 차이를 점점 줄이는 건 '대화'라고 말한다. 솔직한 대화 말이다. 하지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말하지 않으면, 표현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결국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면 각자의 생각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을 《설거지 누가 할래》가 보여준다. 일본은 우리보다 여남 평등(?)을 주장하기 어려운 문화적 토대를 가졌기에 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변화를 이끌어낸 저자의 이야기는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대화에서 어려운 문화적 토대에서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운명인 듯(?) 만난 남편이 미워졌다가 "둘이 있으면 즐거움은 배로 배로, 슬픔은 반으로. 뭐 이런 상투적인 말이 꽤 맞는 말이라고 실감했다"라고 고백하기까지의 과정인, 《설거지 누가 할래》는 혼자도 좋지만, 함께하는 삶이 주는 즐거움이 있고, 그 함께 하는 삶 역시 끊임없이 노력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리얼하게 들려주는 에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