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번리의 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7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정지현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IMG_5774.jpg

 

 

《빨간 머리 앤》이 시리즈 책인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 사람의 생을 다룬 대하소설 《토지》처럼 앤도 소녀 때부터 엄마가 되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전부 소설로 출간되었다, 시리즈 중에 《에이번리의 앤》은 앤의 두 번째 이야기다. 주근깨가 있고 빼빼 마르고 붉은 머리칼을 가진 앤은 사랑스러운 소녀였다. 스스로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지만, 이 점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런 앤이 어느덧 어린아이에서 열일곱 살이 되었다. 어른이 된 앤은 여전히 에이번리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새로운 공간에 가면 이름을 붙여주고,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상상을 하던 소녀의 모습 대신 주변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상상을 불어넣는 어른 앤이 있었다.

 

앤을 에이번리 마을 초록색 지붕 집으로 데리고 온 매슈 아저씨는 돌아가셨고, 초록색 지붕 집에는 장난꾸러기 쌍둥이가 살고 있고 마을 학교의 선생님이 된 앤은 짓궂은 학생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하루하루 성장하는 학생들 모습에 행복해한다. 하지만 순간순간 앤은 우리가 알던 사랑스러운 앤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 평범하지 않은, 사랑스러운 앤의 모습으로 말이다. 

 

"글쎄, 한때 어린 소녀였던 버릇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걸. 난 14년 동안이나 어린애였고 어른과 비슷해진 건 겨우 3년밖에 안 되었어. 난 숲속에서 언제까지나 어린애가 된 기분이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내가 유일하게 꿈꿀 수 있는 시간이거든. …(생략)…."

 

어른이 된 줄 알았던 앤이 숲에서 어린아이로 바뀌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린 다이애나처럼. 나도 웃고 있었다. 10월 중순을 훌쩍 넘기고 어느덧 11월을 앞둔 지금. "올 11월은 정말 좋아! 보통 11월은 우울하기만 한 달이었는데. 마치 한 해가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슬피 울거나 조바심 내는 일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하지만 올해는 우아하게 나이를 먹고 있어."라고 말하는 앤처럼 난 우아하게 나이를 먹고 있는지 질문도 하며 《에이번리의 앤》을 읽었다.


 

IMG_5784.jpg

 

 

《빨간 머리 앤》과 또 다르게 《에이번리의 앤》이 좋았던 이유는 '꿈'과 '사랑'에 대한 앤의 생각이 움트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으로, 초록 지붕 집에선 쌍둥이의 든든한 언니와 누나인 앤의 모습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다. 앤은 교사로서, 가족으로써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존경하지 않는 학생 앤서니 파이 때문에 힘들어한다. 동료 교사이자 친구와 체벌을 두고 의견 대립을 보이며 어떤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인지 고민하는 앤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도 어려운 일이 바로 아이들의 진짜 생각을 말하게 하는 것임을 알고, 어떻게 솔직한 아이의 생각을 이끌어낼지 방법을 찾는다. 앤을 힘들게 하는 일이 많지만 그럼에도 앤의 선택은 한결같다.

 

"결점도 있지만 데이비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예요. 전 그 애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타협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부딪친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아이에게서 달라질 가능성을 발견하고 나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지도한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도 빼 먹지 않는다.


 

IMG_5786.jpg

 

하지만 항상 앤이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대로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빨간 머리 앤》 때처럼 서투르고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 아니에요, 마릴라 아주머니. 다시는 아이들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요. 너무도 창피한 일을 저지른 기분이에요. 제가 그때 얼마나 짜증 나고 혐오스럽고 지독했는지 모르실 거예요. 폴 어빙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너무 놀라고 실망한 것 같아요. 오, 마릴라 아주머니, 전 앤서니가 저를 좋아하게 만들려고 많이 참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이제 다 소용 없어졌어요."

 

처음으로 앤은 앤서니 파이에게 매를 든다. 하지만 이내 앤은 스스로가 한 행동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이 일이 앤서니 파이의 진심을 얻을 기회를 날린 것이라며 자책한다. 아이러니하게 앤이 올바른 결정을 했을 때보다, 아프게 후회하며 돌이키는 모습에 난 더 공감이 갔다. 앤의 자신의 실수를 피하지 않고 오로지 받아들이는 태도가 참 좋다. 좀처럼 가지기 힘든 삶의 태도라는 것을 알기에 크고 작은 일에 아프게 반성하고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좋다. 그런 앤이기 때문에 마릴라 아주머니가"오늘 하루는 지났고 내일은 또 다른 하루가 다가오니까."라며 앤을 위로하지 않았을까.


 

IMG_5791.jpg

 

 

어린 시절 앙숙이었던 길버트와 관계가 달라지는 모습도 《에이번리의 앤》에서만 볼 수 있다. 희망에 찬 자신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앤과 길버트의 대화는 읽는 이로 하여금 희망에 부풀어 오르게 만들었다.

 

애는 태어난 순간부터 빛을 가진 아이였다. 앤의 미소나 말 한마디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그때만이라도 햇살처럼 환한 빛을 주었다. 희망과 사랑, 선함으로 가득했다.

 

소설가가 해설을 더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꿈에 대해 앤과 더 대화를 나누지 못해 아쉬운 길버트의 속마음에서 이미 이 소설의 말미에 있을 일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말을 알고 있다고 해서 과정이 흥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돌고 돌아 사랑을 이룬 라벤더와 스티븐 어빙을 통해, 조금씩 사랑에 대한 앤의 생각을 확인하며 미소 짓곤 했다. 낭만적 사랑이 아니라면 홀로 살겠다고 선언하는 앤의 태도에 조금 크게 웃으며 조금씩 달라지는 앤의 생각을 확인했다.

 

"어쩌면 낭만적인 사랑은 백마 탄 기사님처럼 화려하고 요란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오래된 친구처럼 조용하게 다가오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사랑은 예상치 못했을 때 빛처럼 나타나 시와 음악이 있는 책장을 넘겨 버리고 평범한 산문처럼 나타날지도 모른다. 마치 초록색 꽃망울이 황금빛을 띠는 장미꽃으로 바뀌는 것처럼."

 

사랑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며, 앤은 조금 더 성장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때도 앤은 여전히 사랑스러울 것이다.


 

IMG_5792.jpg


 

《에이번리의 앤》 속 앤은 늘 자신에게 주어진 매일에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읽는 내내 앤은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아이일 때나. 어른일 때나.
그 존재 자체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