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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 -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리처드 H. 탈러 &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안진환 옮김, 최정규 감수 / 리더스북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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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 애독자인 나에게는 고민이 있다. 분명히 좋은 책이라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읽고 싶은데도, 읽을 시간이 없어 쌓이는 책들이 있다. 이동하면서 책은 읽고 싶은데, 읽고 싶은 책이 무거울 때면 망설여진다. 결국 커다란 배낭에 읽고 싶은 책을 넣고 독서를 즐기지만, 이렇게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따로 독서 시간을 가지고, 책을 읽는 사람도 있지만 시간을 내서 책을 읽기 어려운 요즘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틈틈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모든 책이 집 밖으로 들고나가기에 부담 없는 무게가 아닌 것이 문제다. 나와 같은 독자를 위해 나온 책 디자인이 있으니, '99그램북'이다. 몇몇 벽돌책이 99그램 에디션의 옷을 입고 나왔다. 그리고 99그램 북 디자인과 가장 잘 어울리는 책, 『넛지』 가 '99그램 에디션 북'으로 나왔다. 가방은 가볍게, 생각은 무겁게 채울 수 있는 책으로!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이전부터 『넛지』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읽은 베스트셀러다. 고등학생 때 읽고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생각과 행동을 설계할 수 있고 그 방향을 선한 쪽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을 풀어내 인상 깊게 읽었다. 다시 99그램 에디션으로 만난 『넛지』는 흥미로웠다.
우리는 매일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선택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대니얼 카더먼 이후 많은 행동경제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넛지』의 저자 역시 행동경제학 이론적 토대에서 사람의 선택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선택을 하는 이는 인간들이다. 따라서 선택 설계자는 가급적 그들의 삶에 이로움이 더해지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신경 써야 한다. 선택하는 이들이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주고, 당신의(그리고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잊어버리는 이들에게 부과되는 비용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의 선택이 보다 개인을 이롭게 하고, 가치 있는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노력'이 바로 넛지다.
넛지는 '팔꿈치로 옆구리를 슬쩍 찌르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책에서 넛지는 하나의 이론이자 개념으로, (인간의 행동) 선택 설계자가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줄이지 않고도, 예상 가능한(혹은 의도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 책의 부제처럼 사람들이 '똑똑한 선택을 하도록 이끄는 힘'이다. 99그램 북으로 보자면, 넛지는 책이 무거워 혹은 책을 들고 나기는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전자책을 읽기는 망설여지는 독자에게 넌지시 책을 읽게 하는 마케팅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읽기만을 강조하지 않고, 가지고 싶도록 예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부드럽게 책을 읽도록 만드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전략은 설명만 들었을 때 사람의 행동을 의도 안에서 작동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리처드 탈러의 설명을 읽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99그램북 만큼이나 재미있게. 가볍게. 다가와 눈치채지 못하는 그런 방법이다.
넛지는 크게 4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4부분은 굉장히 논리적으로 짜여 있다. 1부(1권)는 넛지 이론이 등장한 배경, 넛지가 왜 우리 삶에 필요한지 설명하는 장이다. 한마디로 넛지란 무엇인지 설명하는 장이다. 인간의 선택이 감정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고, 옳음을 결정할 때 환경의 영향을 잘 받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환경의 영향을 잘 받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듯, "그리고 지금 현재의 상황보다 훨씬 나은 쪽으로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존재"한다는 것이 넛지 이론의 출발점이다. 넛지 이론은 환경과 조건을 살짝 바꾸어, 보다 나은 결정 혹은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을 말한다. 그리고 넛지가 얼마나 유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신의 선택이 궁극적으로 삶에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가? 자신의 선택이 궁극적으로 삶에 미칠 영향을 쉽게 예측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수많은 선택으로부터 어쩌면 심지어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부터도 비교적 많은 이익을 얻지 못한다. 이 경우에 넛지가 매우 반가운 존재가 될 수 있다." 넛지를 꼭 알아야 할 것 같이 만드는 부분이었다.
2부(2권)는 '돈'에 있어서도 우린 다양한 선택과 그 선택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결과가 있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돈을 둘러싼 결정 속에 어떤 맥락이 존재하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파악하고자 하는 시야를 가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넛지를 이해했을 때 다른 방식으로 '돈'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돈을 사용하는 방법에는 소비와 저축이 있다. 그리고 어떤 소비와 어떤 저축을 하느냐로 수많은 선택지가 존재한다. 그 선택이 모든 사람에게 이윤을 안겨줄 수 없지만, 손해로 이끄는 선택으로 만드는 방법은 있다. 애석하게도 돈을 얻는 길보다 잃는 길이 넓다. 저자는 미국을 경제 수렁에 빠뜨린 모기지 사태를 들어 설명하기도 했고, 우리에게도 친숙한 신용카드 사용과 관련된 예를 들었다. 책의 많은 예시가 미국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데이트레이드가 익숙한 우리나라 주식투자 문화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같은 돈을 얻을 때 얻는 기쁨보다 같은 돈을 잃을 때 받는 슬픔이 더 큰 것은 미국인이나 우리나라 사람이다 동일하니까.
3부(3권)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국가가 넛지 이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실제로 행정학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넛지 이론을 활용한 정책 사례를 공부했던 터라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정부 역시 하나의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가 된 지 오래되었기에, 이미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크고 작은 넛지 정책에 익숙해져 있다. 환경 문제 (온실가스), 결혼에 대한 부분 외에 신선한 정책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어도 될 만큼 친숙하고, 어쩌면 진부하다. 사례만 익숙할 뿐 그 뒤에 넛지 정책과 개인과 사회 간의 이론에 대한 맥락을 연결 짓는 논의는 결코 진부하지 않다. 이 논의는 4부(4권)에서 넛지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이에 대한 저자의 재반박을 통해 다시 한번 집고 넘어간다. 넛지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만, 그 논리 뒤에 정의와 윤리에 대한 부분까지 볼 때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3부와 4부를 집중해서 읽었다. 고등학생 때는 넛지 이론 자체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이론과 이를 둘러싼 측면을 주목했다. 각 장이 독립적인 책으로 분권화되어 있어서 가능했다. 각 장의 내용을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었고, 그 독립적인 읽기는 넛지 이론 자체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넛지 이론과 관련된 이념적 논의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저자는 서론에서 "이 책의 주요 목표 한 가지는 우리들 가운데 섞여 있는 호머에게 (그리고 우리 안에 숨어 있는 호머에게) 세상을 보다 편한 곳 혹은 보다 안전한 곳으로 바꾸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자동 시스템에 의존하면서도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더 편하고 더 나은 삶을 더 오랫동안 영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굉장히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4차 산업혁명 시대, IT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늘어나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은 자동화된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게 더 이로운 방향으로 환경을 조성한고, 이 환경 조성에 대하여 정말 이로운 방향인지 재고하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다. 2017년에 '넛지'이론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이유를 알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이 전 세계 화두였던 그때 노벨 경제학상을 '넛지' 이론이 받은 이유는 여기에 있는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