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그림 하나 - 오늘을 그리며 내일을 생각해
529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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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는 연말에 어떤 한 줄을 남길까? 궁금해진다.

생각이 나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2017년 10월. 아마 중간고사와 레포트에 치인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았을까? 다이어리에는 각종 과제 마감, 조별 과제 약속, 시험 일정 등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는 걸 보니. 꽤 열심히 학기를 보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날 내가 무엇 때문에 웃고 울었는지. 언제 행복하고, 무엇에 설렜는지, 왜 슬펐는지 등은 기억나지 않았다.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붙잡기보다 평범하고 다를 것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학교나 직장을 다니면 '나'의 하루, 일상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대신 '학교 일정'이나 '회사 일'은 이상스럽게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나 회사 일정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각종 기록으로 많이 남고, 내 일상보다 다사다난한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일상은 어떨까?

내가 기록하고 기억하지 않으면 나의 일상은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크게 달라진 것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오늘을 기록해두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하루 그림 하나》도 이 생각에서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냈기 때문에 업무가 아닌 내 생활에 대한 건 전혀 기억으로 남은 게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머리말에 적힌 저자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내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529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의 하루를 기록하기로 다짐한 후, 매일매일을 기록했다. 그림과 글로. 그 기록을 담은 책이 《하루 그림 하나》다.







"고마워!"

그날 떠오른 생각. 그날 있었던 일. 그날 보았던 것들. 그날 만났던 사람들...
하루하루 나를 행복하게 만든 것 하나만 골라 정성스럽게 기록으로 남겼다. 총 365가지 모두 다른 기록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하루하루가 자세히. 정성스럽게 들여다보면 모두 다르다는 걸 말해준다. 얼마나 솔직한지 읽다가 공감 가는 구절이 자꾸만 눈에 보였다. "하루 종일 불도 켜지 않고 컴컴한 곳에 누워 있다. 눈을 잘 뜰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오랜만에 핸드폰 메모장에 일기를 쓴다. 오타가 엄청날 것 같지만."과 같이 라섹수술 후기를 남기기도 하고, "가장 단순해질 때 행복해지기 쉽다는 걸 알아.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고, 웃기면 웃고, 슬프면 슬퍼하고, 화가 나면 화를 내면 되잖아. 그렇게 간단한 것들이 우리는 왜 이렇게 어렵기만 할까."라는 푸념에 마음이 찌르르 움직였다.
이토록 솔직한 그의 일상에 드리운 감정은 '소중함'과 '고마움'이다.
 





누군가의 그림일기장을 보는 기분.. 《하루 그림 하나》는 우리의 일상처럼 잔잔하고 평범한 하루하루가 주를 이루고 이따금 여행이나, 라섹 수술과 같은 일이 있다. 일기를 채우고 있는 건 그날 있었던 일이 아니다. 그날의 '나'다.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날 내가 어땠는지에 집중하고 있다. 처음에는 1년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보았다. 한 장 한 장 채워진 작가의 그림과 글에는 그날 있었던 일보다 그날의 '나'가 더 많았다.

나는 다시 안 올 순간을, 기회를 그저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래도 되는 걸까? 잘하고 있는 건가? 불안 섞인 의문은 빠르게도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럴 땐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내며 이 질문 하나로 마침표를 찍는다.

"곡 잘할 필요 있나?"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 _ 수학자 파스칼

일기를 쓰고, 기록하며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저자를 보며, '나'에 대해 생각보다 들여다보지 않은 나를 생각했다. 매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나'를 말이다. 일로 하루를 기록하지 않고 감정으로 생각으로 기록한 일기였기에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무엇보다 포근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일러스트가 한몫했다. 색연필로 쓱쓱 그린 질감. 왠지 마음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물감이나 포토샵이나 연필, 파스텔과 전혀 다른 색연필 느낌이어서 《하루 그림 하나》가 더 매력적이다. 작가가 색연필을 사러 간다는 글에. 좋은 색연필로 다른 날들을 따뜻하게 담아주길 바라기도 했다.







시선이 많이 머무는 때는 아무래도 9월, 10월, 11월이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계절감이 그림 속에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이다. 봄에 이 책을 봤다면, 작가가 좋아한다고 했던 5월을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서늘한 바람이 내 빰을 스치는 완연한 가을. 이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그림에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긴팔과 반팔이 오가는 그림 덕분에 계절감을 느끼기란 쉽지 않지만. 은행잎이나 송편을 보며, 안 그래도 짧은 가을 날 하루하루를 기억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하루 그림 하나》의 마법은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데 있다. 이렇게 예쁘게 그리는 건 어렵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하루하루를 기록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부른다.

"앞으로도 이 기록이 스스로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씁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나와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까? 


나도 매일매일을 짧게라도 기록을 해두어야 할까? 가끔 일기를 쓰지만.
하루에 한 줄이라도 기록을 남겨두어야겠다.
'나'에 대하여.
2018년. 2019년...
하루하루 고민하고 배우고 감사한 '나'는 모두 다를 테니까.

《하루 그림 하나》의 마지막 장은
"많이 고민했고, 배웠고 또 감사했던 올해도 이젠 안녕!"이다.

올해 나는 연말에 어떤 한 줄을 남길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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