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 - 몸의 감각을 되찾고 천천히 움직이고 필요 없는 것은 내려놓고
히로세 유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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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왔다. 무엇을 읽어도 좋을 계절이지만,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래서 난 가을을 무척 좋아한다. 깊이 생각할수록 그 파고 들어간 깊이만큼 무언가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충만해지기에. 이런 나의 바람과 조금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하는 책을 읽었다. 제목부터,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라니. 내 안에 무언가를 꽉꽉 채우려는 의지와 조금 반대되는 말 같았다. 느긋함과 가득히 채우는 건 조금 머니까. 《어쩌다 보니 50살이네요》의 저자 히로세 유코는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내 속에서 무언가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만큼 마음속 자양분이 늘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무턱대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드냐는 것이지요.
_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 26쪽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변화는 시작된다고. 거대한 지적 담론이나, 인간의 심연을 파헤친 이야기도, 트렌디한 지식만이 사람의 머릿속을 채우는 건 아니라고. 나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배움을 결정하는 건, 내용보다 마음가짐이라고.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를 읽으며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쉼'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읽었다. 히로세 유코처럼, 세심하게, 천천히, 심플하게 그리고 느긋하게 말이다.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는 저자가 '나다움'을 어떻게 가꾸었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히로세 유코는 지극히 개인적인 삶 속에서 얻은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배움을 말한다.


바라는 것이 모두 이루어진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에서 필요한 일이고, 간절하게 원하면 그 바람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하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알고 있으면 삶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해 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희망사항을 써야겠지요.
_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 37쪽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적은 후,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_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 41쪽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는 것 그리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생각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말한다. 누군가를 위해서나 누군가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었던 일과 하기 싫었던 일을 통해 좀 더 마음에 드는 나를 만났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내가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던 나에게 이 이야기는 새로운 리스트를 만들어보고 싶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인생에도 '소거법'이 통한다는 새로운 방법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기에도 바쁜 의욕적인 사람인 나에게는 조금 색다른 방법이라 더 인상 깊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글들이 좋았지만, 이처럼 내가 생각지도 못한 걸 말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한 번쯤 경험했던 좋은 일이나 떠올려본 생각들을 적은 글이 더 많았다. 익숙함을 가지고 있는 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읽으며 편안했다. 마치, 저자의 삶과 내 삶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가까이 닿아 있단 느낌이 든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의 글이라기보다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의 글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아닌데.'라는 의문보다 '그렇지.'라는 끄덕임이 더 많이 간다. 그건 삶 속에서 끊임없이 '나다움'을 갈고닦았던 저자의 노력이 글에 자취를 남겼기 때문이다. 내가 보내온 시간이 나를 완성한다는 생각을 하고,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본 저자다움이 글 자체에 담겨 있었다.


나는 일을 통해 나를 알고, 배우고, 성장했습니다. 무언가를 돌려주고 싶다, 전해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일이 가르쳐준 것입니다.
_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 146쪽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쓴 책이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이다. 그렇다고 꼭 자신처럼 하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신과 다른 방식 역시 저자는 존중한다. 하지만 바쁘고 분주하게 일상을 보내느라 놓치는 요즘 필요한 건 '세심하게, 천천히, 심플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게 조금 더 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책을 읽으며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생각의 쉼표를 찍어주는 책이다.


무엇을 선택하면 좋을지, 어떤 판단이 좋을지는 의외로 자신이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면 좋을지 무의식 속에서 마음이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소리에 그대로 따르면 됩니다.
_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 123쪽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말이다. 피로사회가 익숙한 피로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하지만 피로에 익숙해져서 '나다움'을 가꾸기에 소홀했을 뿐이다. 히로세 유코의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와 함께 소홀했던 나다움을 채워나가는 가을을 맞이하면 어떨까.


"지금 나는 공백이 많은 수첩을 보면서 이 정도가 딱 좋다고 생각"하며 마음에도 수첩에도 바람 지나는 길을 열어두기도 하고, 나만의 '기분 좋게'를 만나 하루하루해야 할 일이 확실하게 만들어보고, 소중한 사람에게 나답게 마음을 전해보기도 하면서 가을을 보내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나다움'이 채워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인생의 주인공은 그 사람 자신입니다. 일이 주인공은 아닙니다. 일이 잘 풀려도 풀리지 않아도 인생의 소중한 1년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 해도 좋은 해가 될 수 있습니다.
_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 79쪽


책을 다 읽고, 몇 개 실천해보면 알 수 있다. 조금 느긋하게 보낸 시간이 굉장히 소중한 채움이 될 수 있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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