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감각 - 삶의 감각을 깨우는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지음, 최재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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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작가만이 하는 고민은 아닐 것이다. 글을 읽는 독자로써도 이 고민은 유효하다.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는 나에게 이 질문은 좋은 책을 발견하기 위한 고민이고, 좋은 서평을 쓰기 위한 기초적인 고민이다. 그리고 참 어려운 고민이다. 그렇다면, 작가와 나와 같은 독자만의 고민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SNS의 발달로 내가 쓴 글이 일기장에만 남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다양한 형태의 글이 존재하고 그 전달 방법 또한 다양해진 요즘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하게 되는 생각이 '나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가 아닐까. 그 질문에 대해 한 권의 책으로 답을 준 사람이 있다. 바로 앤 라모트다. 애독자였던 작가는 읽기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작가로 발돋움했다. 

나의 내면에서는 언제나 끝없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어 약간이라도 창조적이거나 정신적이거나 미학적인 방식을 찾아내려 애썼고, 그것을 내 머릿속에 나름대로 조합해 보려 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다. 사실 완전히 책벌레에 가까웠다. 책은 나의 피난처였다.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책 속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 버려서, 내가 있는 곳의 공간도 시간도 모두 잊어버렸다.

프롤로그를 읽고 조금 실망했다. 여느 평범한 작가의 자서전과 닮아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명성이 자자한 작가들이 하는 여느 이야기들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프롤로그만 읽고 포기하기에 이 책 뒤에 붙어 있는 명성이 대단했다.<쓰기의 감각>은 출간 이후 25년간 한결같이 아마존 글쓰기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수많은 작가 지망생이 손꼽은 인생 책이라니.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좋은 글이란 진실을 말하는 것이며,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는 진실을 끌어올리길 간절하게 바라는 글쓰기 선생님의 말을 믿고 쭉 읽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는 아니지만, 미국에선 '대중의 작가'로 불릴 만큼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신뢰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만은 꼭 이해시키려고 애쓴다. 즉, 아무리 글쓰기에 능숙해지고 책과 이야기와 기사를 많이 발표한 작가가 된다 하더라도, 글 쓰는 일이 그들이 바라는 것을 모두 충족시켜 주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저자를 신뢰할 수있었다. 완전한 글쓰기란 존재하지 않으며, 완전한 글을 쓰는 작가도 존재하지 않는다니. 이보다 솔직한 말이 어디에 있을까. 이 말을 조금 확장하여 생각한다면, 타고난 작가도, 만들어진 작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지 않을까?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으며, 누구나 자신의 삶의 감각을 깨우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글을 쓰는 데 특별한 자질은 필요하지 않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진실을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 마음가짐과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다듬어나가야 할 아주 기본적인 스킬만 있으면 된다. 나는 앤 라모트가 <쓰기의 감각>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새로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좋은 글쓰기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본질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 벼룩이라면 이런 열망을 공유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의 글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글을 쓴다. 우리는 말하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본격적인 글쓰기 강연이 시작되고, 맨 첫 장 "시작하기"의 첫 문단이다. 글쓰기 대상을 예비 작가 지망생으로 했는지, 작은 마을의 공개강좌로 설정했는지, 불특정 다수로 택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작가 지망생이란 좁은 대상에서 점점 확장되는 걸 느낄 수 있다. 작가 지망생을 위한 강의록에서 시작한 강의가 대중들을 위한 글로 확장해나가는 걸 느낄 수 있다. 초반부에는 작가를 위한 글처럼 보인다. 아니, 작가 지망생을 위한 글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하지만, 그런 글이라고 해서 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문법, 작문론 등을 말하는 건 아니다. 어떻게든 펜을 들고 글을 쓰게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다. 스티븐 킹의 뮤즈론이 떠오르는 대목도 있고, 이런 방법이 도움이 될까 싶은 방법을 써놓은 대목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쓰고 싶은 욕망을 잘 분출(?)할 수 있는지 등을 차근차근 자신의 글로 풀어 놓는데 집중한다.

"글쓰기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워 가는 것이다." 저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부여잡고 글을 쓸 것을 주문한다. 나의 경험을 고백하고, 나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만큼 좋은 글도 없다고 말한다. 이는 그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 진실을 말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진실을 고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글쓰기는 결국 당신이 자신을 믿도록 스스로 최면을 걸어서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쓴 다음, 최면에서 깨어난 후 그 글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라는 말처럼. 자신의 글을 멀리 떨어져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 말한다. 

글쓰기 책이라기보다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단상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자신의 경험이 많이 나오고, 글쓰기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많다. 정확하게 에세이같다. 글쓰기 책이 아니니, 그의 글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순간도 온다. (글쓰기 책이라면 결례가 될 것 같아 보여주기 망설여지지만. 에세이인데 어떤가?) 많이 쓰는 것, 꾸준히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글에 자신의 철학을 담아야 한다는 말은 열린 결말로 독자를 힘겹게 하는 작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지나치게 자신이 말하고 싶은 진실에 치중한 작가에게는 때로 자신의 글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도 있음을 말한 부분을 보여주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면, 한 작가가 글쓰기에 대해서 말했지만, 이토록 다양한 글의 형태가 빚어질 수 있음에 놀라게 된다. 한 사람과 글이 쌍둥이처럼 동일하다면, 왜 다양한 조언과 방법이 필요하겠는가. 글도 사람만큼이나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르고,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면만큼이나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글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생을 이야기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글쓰기를 말하지만, 그 글을 쓰는 바탕이 되는 한 사람의 삶이 대응되기 마련이다. 그의 글에는 그의 삶과 글이 묻어 있다. 그리고 글쓰기의 목적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왜 글을 써야 하는 거죠?"
나의 대답은 이것이다. 바로 영혼 때문이라고, 마음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글을 쓰고 읽는 일은 우리의 고독을 덜어 준다. 그것은 인생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깊고 넓게 확장시킨다. 한마디로 그것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다. 
 

참 멋있는 맺음말이었다. 나도 이제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일단, 꾸준히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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