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그 연구의 신봉자가 되었어요. 다 옳은 말이에요. 그저 실험실에서나 통하는 것은 아니에요. 현실을 잘 포착한, 경제학자에게 중요한 내용들이죠. 나는 그것을 어디에 써먹을지 여러 해 고민했어요. 답은 못 찾았지만."

<맘마미아 2>가 나왔다. 무려 2008년에 <맘마미아>가 나오고 10년 만의 일이다. 이렇게 본편의 영화 다음 이야기의 이전의 일을 다룬 속편을 가리며 프리퀄이라고 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프리퀄인 <호빗>,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의 프리퀄인 <신비한 동물 사전>. 유명한 책과 영화에 나온 내용과 살짝 엮어져 그 이전의 일을 다룬 프리퀄은 본편을 보고 감동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비슷하면서 또 다른 세계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감동을 안겨준다. 그래서 많은 작품들은 본편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난 후에 그 이전의 이야기를 풀어낸 프리퀄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 경제학 이론에 대한 '프리퀄'을 다룬 책이 있다. 바로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다. 기존의 주류 경제학자에게 인간은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는 합리적 존재였다. 이에 대해 "우리는 체계적으로 실수를 저지르며 인간은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존재"라며 인간을 재정의한 경제학자가 있었다. 아니 그는 심리학자였다. 그리고 그는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왔다. 바로, "행동경제학"이라는 경제학 이론을 세운 것이다. 경제학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그 본질에는 인간의 심리와 생각을 분석하는 데서 태동한 것으로, 바로 노벨경제학상 역사상 최초로 심리학자가 수숭한 전례를 만든 대니얼 카너먼이 만들어낸 이론이다. 심리학과 경제학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의 비합리성에 주목해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낸 그가 정립한 행동경제학을 다룬 책이 바로 생각에 관한 생각』이다. 

행동경제학이라는 이론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이야기에 대한 책이 바로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다.  대니얼 카너먼이 어떻게 행동 경제학 이론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와 함께 행동경제학 이론의 토대를 잡아간 아모스 트버스키에 대해 세세하게 다루고 있는 책이다. 두 경제학자의 평전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니 평전이나 자서전과는 다른 성격의 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평전이나 자서전이 취하는 방식과 달리, 두 사람이 인간의 생각과 마음에 대해 관찰을 시작하게 된 계기 즉,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까지 지적 도전 과정을 추적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 책이었다. 그것도 두 사람의 삶 자체에 주목하면서 말이다.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유대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사교적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샀던 아모스 트버스키와 달리 대니얼 카너먼은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뉘는 인물이었다. 비슷해 보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달랐던 두 사람은 살아온 유년 시절의 기억까지 모두 달랐다. 홀로코스트를 겪어야 했던 대니얼 카너먼과 이스라엘 땅에서 자란 유대인이었던 아모스 트버스키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람과의 관계, 학문을 대하는 방식까지 모두 달랐다. 공통점이 있다면 두 사람이 천재였다는 점 정도였다. 동시대에 주목을 받았던 학자였지만, 각자의 이론에 열정을 쏟았던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서 있었지만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지는 못했다. "대니와 아모스가 미시간 대학에 있던 기간은 6개월이 겹쳤지만, 둘의 동선은 좀처럼 겹치지 않았고 둘의 생각도 전혀 겹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시기에 대해 대니는 "우리는 함께 연구할 만한 것이 많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학생들은 대니와 아모스, 두 분 사이에서 일종의 경쟁의식을 느꼈어요. 두 분은 심리학계 스타가 분명했는데, 어쩐지 어울리지는 않았죠."라고 말할 만큼 두 사람이 함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만날 가능성이 희박할 때. 그 만남이 더욱 극적으로 보이는 법이다. 하지만 처음 아모스가 한 이야기를 쭉 지켜본 대니는그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결정을 내릴 때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가를 알아보는 이 새로운 연구를 대니는 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나는 생각에 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대니의 말이다. 대니에게 생각이란 대상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을 들여다본 이 연구는 대니가 현실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생동이라고 알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눈은 체계적으로 속을 때도 많았다 귀도 마찬가지다." _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165쪽

하지만 이때 아모스는 대니의 수업을 떠나면서 평소와 다른 마음을 먹었다. "의심하자! 수업을 마치고, 그는 그동안 타당하고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이론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태도 자체가 자기주장이 강한 아모스에게서 좀처럼 찾기 어려운 변화였다. 아모스는 설사 기존의 이론이 의심을 받더라도 평균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하면, 그 이론을 폐기하기 보다 간직하는 경향이 있는 학자였다. "당시 사회 과학에서 통용된 최고의 이론은 인간은 합리적이라거나 적어도 썩 괜찮은 직관적 통계 전문가라는 이론"이었고, "인간은 새로운 정보 해석과 확률 판단에 뛰어난" 존재라는 판단을 했으며, "실수는 감정의 산물이며, 감정은 종잡을 수 없고 따라서 무시해도 괜찮은" 것이었다. 하지만 대니는 기존의 경제학 이론의 토대를 흔드는 충격을 아모스에게 던진 것이다. 그리고 그 충격은 평행선과 같이 닿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의 관계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이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에서는 이 작업의 적용 범위를 경제 계획, 과학 기술 예측, 정치적 결정, 의학 진단, 법적 증거 평가 등 더 높은 수준의 전문 활동으로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또 그런 분야에서 "전문가들에게 그들의 편향을 인식하게 하고, 더불어 판단에 나타나는 편향의 원인을 줄이면서 그 대응법을 개발하게 한다면, 전문가들은 훨씬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밝혔다. _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228-229쪽

두 사람은 사람들이 판단을 내릴 때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를 밝혀내 그 오류를 점검할 수 있는데 기여한 행동 경제학의 토대를 차근차근 쌓아갔다. 각종 실험과 사례를 분석하며 합리적 존재라고 믿어온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존재인지를 밝혀냈다. 그 과정 중에 두 사람은 굉장히 단단한 관계를 쌓기도 했다. 욤키푸르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두 사람은 자기 생각에 대한 열정과 상대에 대한 열정을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친밀하고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론이 단단해져 간다는 건, 두 사람의 관계도 서서히 멀어져 갈 때가 다가온다는 뜻을 의미하기도 했다. 마치 평행하지 않는 두 선이 어느 시점에 가까이 가서, 점에서 만난 뒤 다시 각자의 길을 따라 멀어지는 것처럼. "우리는 사고의 허점과 오류를 자각하도록 가르치려 했다. 정부와 군 등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상대로 이를 시도했지만, 일부만 성공했을 뿐"이라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도록 돕는 데 가능성을 발견했지만, 어른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확인한 것이다. 그 아쉬움은 두 사람의 연구가 판단 문제에 대한 결론을 끝내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야 할 때임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꽤 단단하게 예상보다 길게 함께 해온 두 사람이 이젠 다른 길을 걸어야 할 때였다.

두 사람이 영원의 동반자로 자리하게 되었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로 이 프리퀄은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함께하지 않는다고 하여, 떨어져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두 사람이 보여준다. 가까워진 두 사람이 멀어질 시기가 다가왔다는 건 이전에 용인할 수 있었던 것들이 흠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분명해졌다. 아모스에게 대니의 말은 날선 논리가 아니라 무른 논리였다. 그리고 아모스의 언어는 대니에게 너무 거친 언어였다. 대니는 달래는 사람이었고, 아모스는 괴롭히는 쪽이었다. 다르기에 훌륭한 프로젝트를 해낼 수 있었지만, 그 다름의 격차는 결국 두 사람이 서로 멀어지게 만들었다. 국립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대니를 추천하지 않은 아모스에게 대니는 서운함을 느꼈고, 그 서운함을 느끼는 대니를 파악하고 있던 아모스는 두 사람의 이론에 부합하지 않는 비교적 합리적인 인간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친구가 절교하는 것 이상의 이별을 겪는다. "일종의 이혼이었어."라는 대니 회상이 두 사람에게 헤어짐이 얼마나 쉽지 않았는지 보여준다.

두 사람의 마지막이 어땠는지는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를 통해 확인했으면 좋겠다. 딱딱하고 냉정해 보이는 두 경제학자 혹은 심리학자의 이야기는 경제학스럽지도 심리학스럽지도 않다. 경제학도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더더욱 아니다. 어쩌면 인간적이고 한편의 휴먼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들었다. 두 학자가 하나의 패러다임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보기에 좋았고, 즐거운 프리퀄 영화같은 책이었다. 이제 본편을 볼 차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