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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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단하지 말 것.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할 것.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우리가 예단을 하는 이유는 그게 좀 더 쉽고 게으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떠올리면 마음 불편해지는 일들에 대해 너무 열심히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길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당신은 어떤 일을 판단할 때, 항상 냉정함을 잃지 않나? 편견, 오해 그리고 예단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는가. 우리는 쉽게 판단하지 않아야 할 일을 두고, 쉽게 생각하고 결정하며 예단한다. 그리고 그 일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넘기기도 한다. 나 역시 많은 일과 관계에서 예단이라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였다. 때때로 그 실수는 뼈아픈 상처가 되기도 했고, 작은 사건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쉽게 판단하고 결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삶 속에서 반복하는 실수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오해와 편견 그리고 예단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들이 나온다. 사랑과 관련된 오해와 편견뿐만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 오해하지 않았는지, 성장 과정에서 부모님이나 친구를 오해한 경험을 녹여낸 수많은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초크맨>도 '예단'과 관련된 이야기다. 한 아이의 오해, 한마을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으로 인해 30년 동안 짓눌러온 상처를 말하는 이야기다. <초크맨>은 우연히 시작한 초크 낙서와 마을 살인 사건 관련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건은 열두 살인 아이가 감당하기에 벅찬 일이었다. 살인과 낙서.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는 전원마을인 엔터 베리와 살인 사건만큼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그녀를 살해한 범인이 누군지 알아."


저자 C. J. 튜더에게 <초크맨>은 데뷔작이자, 명성을 안겨준 책이었다. 빠른 속도로 영국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 판권이 계약되며 에이전시 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하며, 단편소설을 썼던 저자는 "어느 날 밤, 늦은 시간 차고 문을 열었다가 아이들이 차고 진입로 위에 분필로 그려놓은 일련의 그림들. 사방에서 그녀를 맞이하는 기괴한 초크 낙서를 보고 영감"을 얻어 작품을 썼고, 그 작품이 바로 <초크맨>이다. 열두 살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작은 장난이지만, 그 장난에 이야기를 더해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장르 소설 중 추리 및 스릴러 장르가 많은 사랑을 받는 영국이기에 많은 관심일 받았을 것 같지만, 사실 <초크맨>은 미스터리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본성을 녹여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초크맨>을 읽으며 때로는 미스터리한 추리소설을 보는 것 같고, 또 1986년과 2016년을 오가며 사건을 증폭해가는 과정이 스릴러 영화 같고, 또 다른 면면에서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태를 고발하는 내용이 있어 읽는 내내 소설의 정체가 궁금했다. 


흰색 초크맨이었다. 두 팔을 올리고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입을 'O'  모양으로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었다. 그 옆에 흰색분필로 조잡하게 그린 개가 있었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초크맨을 조심해.



마치 드라마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을 보는 것처럼, 사체가 발견됨에 따라 마을이 들썩인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의 행동은 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파헤치려 하기 보다, 마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체가 발견되기 전부터 분필로 낙서를 할 때마다 이상한 일이 발생하는 데 이상함을 느꼈던 아이들은 결국 사체가 발견되자, 두려워한다. 특히 주인공 에디의 부모님은 마을 사람들과 특히 교회 목사의 비난 대상이자 후에 아버지는 또 다른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는 등의 일이 발생한다.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주인공 상황은 4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소설 내내 유지된다. 글의 전개가 30년이란 시간의 간격을 두고 오가기 때문에 한 시대에 한 사건에 집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때로 시점을 오가는 글의 흐름이 이야기의 맥을 끊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스타카토 음처럼 분절적인 이야기 서사는 짧게 짧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 몰입할 수 있는 형식이다. 단편 소설 연습을 많이 했던 작가가 처음 쓰는 장편 소설에서도 긴장감 있는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덕분에 결말이 몹시 궁금해졌다. 과연 초크맨이 누구인지, 어떤 기막힌 반전이 담겨 있을지 궁금했다.


내 개인적으로 공포를 튼튼한 상자에 단단히 가둬서 가장 깊숙하고 어두컴컴한 머릿속 깊숙이 넣어버리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우리는 어쩌라고? 우리도 공포를 마주 대하고 싶어 할지, 그 모든 걸 다시 떠올리고 싶어 할지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하는 얘기야?"



결론이 궁금했던 책이지만, 결론을 알고 나니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눈에 다시 들어왔다. "궁금한 점들이 많다. 한두 개가 아니다. '어떻게'와 '어디'와 '무엇을'은 어찌어찌 해결했지만 '왜'에 대해서는 아직 모든 해답을 찾지 못했다. 아직 한참 멀었다."와 같이 주인공의 질문이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범인을 알게 되면 <초크맨>이라는 책 속에 담긴 핵심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람의 판단이 얼마나 비합리적일 수 있으며, 또 집단이 모여 있을 때 얼마나 불합리한 판단과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바로잡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어디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 점이 이 소설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열두 살 주인공이 서른두 살이 되기까지의 변화가 이 소설에는 피상적으로만 나타나 있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서술했다면 어땠을까.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가 완성되었을 것이다. 


"너한테 필요할 거야. 에드. 정착하려면. 새로운 시작이잖니. 인간은 누구나 가끔 새롭게 시작할 필요가 있어."

에드가 새로운 시작을 시작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소설이 주는 좋은 점 중 하나는, 한 사람이 한 세대가 자랄 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얻은 지혜를 몇 시간 만에 얻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결국 예단과 잘못된 결정을 돌아본 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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