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 뻔한 세상
엘란 마스타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난 뭘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할지, 그가 어떤 대답을 할지, 그러면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했다. 그래서 그물망처럼 촘촘히 짜인 말과 행동의 경우의 수를 다 끌어내어 결국 단 하나의 적절한 해결책을 준비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계획이 아닌 다른 것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내가 누군지, 나의 어느 부분이 톰이고 어느 부분이 존이며, 그 둘이 겹치는 부분은 어디이고 왜 둘이 다른지 알아냈다. 그리고 우리는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존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한, 존은 우리가 공유하는 정신이 저 깊숙한 틈 속으로 사라지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분명의 새로운 틀을 지을 것이다.
_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중에..

 

이런 생각을 한 적 있다. 지금 세상 모습과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면. 내가 가늠할 수 없는 그런 세계 말이다.
만약에, 이 발견이 앞당겨졌다면 어땠을까. 전쟁이 이렇게 끝이 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사람이 더 오래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 IF가 없다고 하지만, 불가능을 상상하는 게 '우리'다. 각각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보다 그 상상을 구체화하는 사람이 "소설가" 혹은 "이야기꾼"이다.  『우리가 살 뻔한 세상』의 작가 엘란 마스타이 역시 IF를 구체화한 소설가다.

 

2016년이 지금과 전혀 다른 세계 라면 어떨까. 라이오넬 구트라이더의 실험이 성공함에 따라 지구를 기반으로 한 무한 에너지를 얻게 되었다. 덕분에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한 어려움도,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는 부감감도 사라진 인류는 오로지 자신의 행복만 추구할 수 있다. 일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스스로 부여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 외에 어떤 일도 무의미해진 세상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강력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오늘도 분주하게 달리는 경찰은 하찮은 범죄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보험 업무까지 실시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우리가 살았어야 할 곳"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톰 배런'이다. 그는 천재인 아버지의 실험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그 프로젝트는 이 세계를 열었던 실험의 장으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했던 팀장, 페넬로페 베슐러를 톰이 사랑함에 따라 모든 일이 틀어지게 된다. 그녀가 톰의 아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페넬로페는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그 세계에서 소멸을 선택한다. 이후로 톰은 1965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그는 그 세계에서 결국 자신이 살던 2016년과 전혀 다른 2016년을 맞이하게 된다. 그 2016년에서 자신이 살던 2016년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살 뻔한 세상』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제목과 닮은 결론에 이르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죽은 이가 만들어놓은 인생의 벌어진 틈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치 블랙홀처럼, 그 틈은 아무런 빛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기에 우리는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_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중에..

 

같은 시간이 흐르다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다른 세계가 열려진다면 어떨까. 그 열린 사이를 오가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그 답을 이 소설은 들려준다. 같은 시간에 머물고 있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해본 주인공은 굉장히 섬세하게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둘러본다. 단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던 자신의 세계가 한순간 사라지는 걸 경험한 주인공은 혼란을 겪는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과 이 세계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교차하던 순간 자신과 같은 몸을 공유하는 존의 존재를 알게 된다. 톰과 존. 두 사람이 2016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마주한 질문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야 할 세상"에 대한 근원이다. 어떤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인지, 그 세상의 기준은 어느 시대로 두어야 하는지 등의 질문은 그의 생각 속에서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의 기준은 세계관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의 기준은 지극히 작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이다. 사람에 대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 톰이 원래 자신이 살았던 2016년에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는 결정을 한다. 또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페넬로페의 죽음"이 그의 삶을 바꾼다. 하지만, 다른 2016년에서 그는 죽음과 같은 강렬한 일이 없이도 자신의 삶을 바꾸는 결단을 내린다.   


아무도 '왜'라는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답은 명확했다. 우리는 행복했다. 우리의 목적은 이 행복을 유지하는 것이며, 거기에 우리가 기여할 방법이 있다면, 그래서 점진적으로 후세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이전 세대가 우리를 위해서 그랬듯이 말이다.
_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중에..

 

톰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스스로 미래에 대해 질문한다. 그 세계가 강요하는 미래나, 아버지가 원하던 미래가 아닌. 스스로 자신이 생각하기에 더 나은 미래가 무엇인지 말이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의심하고, 지금 이 공간의 분열이 의미하는 바, 시간을 거스르며 바꾸고자 노력했으나 좀처럼 바꾸기 힘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 한 개체일 뿐인지, 스스로 존재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다. 그 답을 찾는 과정에 이성이나 논리, 윤리가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점이 소설을 더욱 매혹적이게 만드는 요소다.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소설 속 세계보다 미래를 살고 있는 2018년의 우리에게 또다시 묻는다. 미래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이다.

 

"아니, 난 미래에서 오지 않았어."
물론 이건 사실이다. 나는 미래에서 온 것이 아니다. 나는 다른 시간선에서 온 것이다. 내가 온 시간은 아직도 오늘이다. 다만 다른 오늘일 뿐이다.
_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중에..

 

소설의 호흡은 점점 빨라진다. 초반부 천천히 흐르던 이야기의 흐름은 뒤로 치달을수록 굉장히 빨라진다. 2016년의 지금을 살아가는 톰은 자신이 살던 시간을 같이 등치 시켜 놓았다. 발전된 현재는 미래가 아니며, 그저 다른 시간 속의 세계일 뿐이다. 이 소설의 통찰은 굉장히 놀랍다. 그 통찰을 재미있게 풀어낸 저자의 이야기 만드는 실력에 놀랐을 뿐이다. 다만, 이 소설의 결말이 생각보다 뻔하게 흘러가서 아쉬웠다. 이미 제목이 다 말해주는 결론이었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 방식에 또 다른 결론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기 보다 이야기를 하나로 정리한 점은 마음에 들었다.

 

어느 날 조현병에 걸린 듯. 다른 세계에서 내가 눈을 뜬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그 세계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전혀 다른 모습이라면, 난 어떤 삶을 살아갈까. 다른 세계를 지금의 세계로 만들기 위해 그 간극을 좁히고자 할까. 혹은 톰과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될까. 그 세계에서 난 어떤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할까. 나 혼자 맞이할 미래가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맞이할 미래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까. 그 질문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 가지고 오길 바라고 있다. 이 소설은. 내가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고민하는 삶이 필요하다. 우리가 살뻔한 세상에 미련을 두기 보다,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꿈꾸는 '우리'가 많아지길 이 소설 속 이야기는 바라고 있다. 그 바람이, 또 다른 독자에겐 어떻게 닿았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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