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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8년 2월
평점 :
미국
남북 전쟁.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다. 미국 본토에서 있었던 전쟁으로, 북군의 승리로 종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외에 정보를 모른다.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의 주인공은
남부 장군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남자다. 남북 전쟁에서 용맹스럽게 싸웠던 자신의 선조의 이야기를 확신에 차서 하는 '리', 소설 속에서 그는
괴짜로 그려진다. '리'는 대도시인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조용한 해변가의 작은 마을에서 설고 있다. 너무 조용해서일까, 그는 자신의 친구
'제시'를 부른다. 그 두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빅서'다. 전기나 전화도 가스관까지 없는 빅서에서 남북전쟁에서 맹활약한 선조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는 리와 그런 리를 바라보는 제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바로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이다.
내가
처음 빅서에 대해 들었을 때는 그곳이 예전에 남부연합의 일부였다는 것을 몰랐다. 빅서가 그랬다는 것은, 마치 그곳이 어떤 아이디어나 전등의
갓처럼, 또는 한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요리하지 않는 어떤 음식처럼, 구식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_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21쪽
빅서가
어느 마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름다움과 몽환적인 곳이면서 동시에 문명이 들어오지 않은 천연의 땅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마치 그곳은
'리'가 자신의 조상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말할 만큼 시간이 멈춘 곳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은 도시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사랑'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랑의 모습 역시 보통 생각할 수 있는 사랑은 아니다. 개구리가 울고, 악어가 있는 연못에서 시작된 이상하고
이상한 사랑이다. 아니, 이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상한 사랑은 남북 전쟁이라는 잔인한 참상과 함께 했을 때, 이상하기보다 그럴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과
한적한 빅서의 풍경은 어울리지 않지만,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리'를 통해 어우러진다. 다르지만, 그 다름이 이상하게
어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소설이 발표된 시점이 1960년대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서양에선 '자유'라는 이름 하에 히피 문화, 68혁명 등
공동체 운동이 있었던 때다.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었으며,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던 때다.
물론 그 외에 다양한 주장들이 나왔지만, '전쟁'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설 전체에서 흐르는 자유 내에
반전이라는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빅서는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이 아니다. 빅서는 1960년대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반문화의 대표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저자가 빅서를 찾은 이유도 아마 빅서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이 독특한 특징
때문이다.
빅서의
조용한 마을에서 살고 있는 '리'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무법자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다. 동성애자인 부자에게서
받은 돈을 술을 마시며 탕진하고, 수전이라는 애인이 있고 애인과 내키는 대로 사랑하는 그의 행동은 결코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리 뿐만 아니다. 그의 친구 제시의 행동도 이성적인 면과 한참 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성으로 이 소설을 본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이들의 비정상적인 행동과 유사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 전쟁터라는 걸 인지하고 볼 때 이들의 기이한 행동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즉,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무자비한 행동이 빅서에서 리와 제시가 하는 기이한 행동과 기묘하게 이어진다. 전쟁의 참상이 남긴 아픈 상처를
리와 제시가 보여주는 것 같다.
소설의
주제는 무겁지만, 의외로 소설은 예쁜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난
모차르트가 좋아." 즉시 내 삶의 짐을 줄여주며 그가 말했다.
그가
음악소리에 미소 짓는 만큼, 나는 내 발이 점점 더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 발도 미소 지었다.
_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43쪽
저자의
표현을 읽다 보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주제 의식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 무더운 여름을 배경으로, 그려진 빅서의 풍경은 잔인함을 고발하고
있지만, 여름의 눈부신 순간을 지나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을 잡는 건 바로 작가의 표현력이다.
별들은 늦게야
하늘에 나타났고, 우리 미래를 둘러싸는 철제 그림틀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해변 아래쪽, 30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불빛을
보았다. 불은 점점 솟아올라 힘과 속도와 중요성이 점점 더 커졌다.
_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172쪽
저자는
소설이 자신의 경험에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빅서에서 아내와 함께 약 한 달 동안 머물면서 겪었던 일들이 소설의 큰 줄기가 되었다고
한다. 개구리가 우는 연못, 아름다운 태평양의 풍경 그리고 돈 많은 정신병자까지. 소설의 핵심 소재는 바로 빅서에서 보냈던 한 달 동안 다
채워진 셈이다. 이야기가 몽환적이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야기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말이 안 되지만
그곳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다. 그런데, 정말 빅서에는 리와 같은 사람이 있을까. 자신의 조상이 남북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고 주장하는
이상한 사람 말이다. 믿을 수 없는 건 작가의 경험과 소설 사이에 일치되는 정도만 아니다. 이 소설 속에서 말하는 이야기를 전부다 믿을 수도
없다. 리의 주장도, 제시의 말도 모두 진실인지 의심스럽다.
"멋진 날이야!" 리 멜론이 말했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때 처음 들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은 뭐든지 들어 보았지만, '멋진 날'이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아마도 그는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려고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과연 나는 혼란스러웠다.
"넌 빅서에 가본 적이 없어."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일레인이 말했다.
"내가 동부에서 대학을 다닐 때, 부모님은 카멀로 이사를 하셨어."
_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124-125쪽
쉽지
않은 소설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근현대 문학 작품을 읽는 것 같았다. 시기적으로 같아서인지 알 수 없지만, 독자에게 친절한 소설은 아니다. 마치
현대 미술 작품을 보았을 때 느낌이다. 이해하고 싶고 그 이해를 위해 생각을 부르는 이야기이기에, 읽을 가치가 충분한
소설이다.
무더운
여름,
빅서에
살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와 함께 아름답고 잔인한, 진실과 허구.
그
모순이 절묘하게 섞인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과
함께 보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