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공간 - 평행우주, 시간왜곡, 10차원 세계로 떠나는 과학 오디세이
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목적은 20세기 말에 초공간 이론으로 촉발된 과학혁명을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초공간이란 4차원 시공간보다 차원이 높은 공간을 통칭하는 용어로서, 요즘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세계적 석학들은 우리의 우주가 더 높은 차원에 존재한다는 가설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만일 이 가설이 옳다면 우주에 대한 과학 및 철학적 개념은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과학에 관심이 많지 않은 10차원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4차원도 눈으로 볼 수 없는데, 10차원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참 신기했다. 하지만 10차원에 대한 논의는 과학혁명이었지만, 그 혁명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이란 과학혁명 뒤에 또 한 번 일어난 물리학계 혁명이었다. 팽창하는 우주에서 예측할 수 있는 세계, 그 세계의 모습은 우리가 지금 보고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아직 모든 의문에 답을 할 수는 없고, 증명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물리학계에서 공론화된 이론들은, 내가 바라보는 밤하늘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는 시야를 열어준다. 그리고 그 시야를 열어주는데 <초공간>과 같은 10차원 세계, 평행우주, 웜홀을 통해 예측할 수 있는 세계를 차근차근 설명하는 책이 딱이다.

 

<초공간>을 읽으며 떠오른 영화가 한 편 있었다. 바로 <인터스텔라>다. <인셉션> 이후로 광대한 우주를 시각화한 <인터스텔라>를 보며 신기했던 장면들에 대한 물리학적 설명을 차근차근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인터스텔라>에서 쿠퍼와 브랜드가 갔던 어떤 행성(혹은 항성)에서 파도가 공간을 압도하는 장면이나, 현장에서 벌어지는 시간의 흐름이 굉장히 길었다가 동시에 짧게 나오는 모습은 차원과 차원 사이의 균열을 떠올리게 했다. 또 영화에서 쿠퍼가 책장을 통해서 보내는 신호는 웜홀을 통한 시간 여행이 생각났다.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장면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알 수 있는 책이 <초공간>이었다.

 

저자인 미치오 카쿠는 어린 시절 놀러 간 곳에서 본 연못의 물고기를 보고 처음으로 차원과 차원의 경계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잉어의 상상력을 벗어나 있다. 잉어와 나 사이의 거리는 수십 cm밖에 안 되는데, 수면을 경계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잉어와 나는 서로 왕래할 수 없는 다른 우주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두 우주 사이의 얇디얇은 수면일 뿐인데, 잉어는 그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자기가 사는 곳이 유일한 세상이라 믿으며 평생을 살아간다."

 

그의 우주에 대한 탐구심은 우주의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밤하늘에 펼쳐져 있는 우주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궁극의 이론'에 대한 공부로 이어졌다. <초공간>은 우주에 대한 책이다. 우주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그 모습을 우리가 어떻게 추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책이다. 이 설명까지 듣는다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생각해보자. 거대한 우주의 모습에 압도되었고, 감탄했을 것이다. 그 정도는 다르더라도, 우주의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은 흥미를 가졌을 것이다. <초공간>은 그런 책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사자의 꼬리만 보여주고 있다, 사자의 몸통이 너무 커서 한 번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겠지만, 나는 그 몸통도 자연의 일부라고 굳게 믿는다."

 

<초공간>은  아인슈타인이 말한 자연과 다르다. 초공간 이론에 대해, 꼬리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몸통까지 온전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공들인 책이다. 그렇다고 초공간 이론에 대한 대중인을 위한 개론서는 아니다. 초공간 이론에 대한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차근차근 초공간 이론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 이론이 오늘날의 모습이 될 때까지 있었던 과학혁명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한다. 가우스의 제자였던 리만은 피타고라스 정의를 입체화하여 만든 리만 방정식과 자신의 이론을 설명할 수 있는 마이클 패러데이의 장의 개념이 합쳐져 초공간 이론은 시작되었다. 이후 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가 수학자들은 치열하게 볼 수 없는 세계에 대해 탐구했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을 만들었다. 리만에서 아인슈타인으로, 그 과정에 대해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그가 완성하지 못했던 이론에 대한 설명을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양자역학 이론 등장과 함께 뒤로 사라지려다가, 초끈 이론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기까지. 그 과정은 파란만장했고, 덕분에 지금의 10차원 초공간 이론에 올 수 있었다. 10차원 초공간 이론에 오기까지. 여러 차례 있었던 과학혁명과 그 비하인드스토리를 차근차근 함께 풀어내 흥미롭게 설명한다. 그의 글과 함께 지금까지 밝혀낸 우주와 앞으로 더 알아야 할 우주가 얼마나 장대한 곳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장대함을 확인하며, 왜 물리학자가 하늘 위에 펼쳐진 세계를 들여다보는지 알 수 있다.
 
<초공간>은 과학 이야기만 하는 책이 아니다. 대중을 위한 교양 과학서를 쓰기 위해 저자가 들인 공이 책 곳곳에 남겨져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품에는 신이 아닌 관측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가 뚜렷하게 반영되어 있고,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 벽화와 다빈치의 스케치북은 2차원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의지를 대변한다. 단단히 말해서 르네상스 예술의 키워드는 '3차원의 재발견'이었다.

 

예술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초공간>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1937년에 미술평론가 메이어 샤피로는 새로운 기하학이 예술계에 미친 영향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비유클리드기하학으로부터 수학이 실재와 무관하다는 새로운 관점이 탄생한 것처럼, 추상화가들은 모방으로 점철된 고전예술의 뿌리를 잘라버렸다." 또한 예술사학자 린다 달림플 핸더슨은 "네 번째 차원과 비유클리드기하학은 현대예술과 이론을 통합하는 중요한 테마로 부각되었다"고 평가했다.

 

미치오 카쿠는 대중들에게 초공간 이론이 어떤 이론인지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자는 초공간 이론의 발전사와 함께, 과학혁명이 과학계에만 멈추지 않고 당대 사회 문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를 어떻게 찾아볼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회화에만 멈추지 않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나라 앨리스>를 언급하기도 한다. 물론, SF 소설은 빠지지 않는다.  과학 이야기만 계속된다면, 과학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읽다가 지루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600쪽이란 방대한 분량의 글 중간중간 담긴 문화, 예술, 사회, 과학자의 비하인드스토리가 더해져 있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인간의 궁금증은 자연을 지배하는 질서의 한 부분이다. 새들이 노래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인간은 우주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 17세기의 위대한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다음고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는 새들의 노래가 어디에 유용한지 캐묻지 않는다. 새들은 노래하기 위해 태어났으며, 노래가 곧 삶의 즐거움이다. 이 점에서는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이 하늘의 비밀을 캐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를 굳이 따지고들 필요는 없다." 또한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1863년에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연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우주와 자신의 관계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초공간>을 읽으며,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물리학자들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우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장 좋았던 건, 점점 이론이 단순해진다는 점이었다. 초공간 이론이 보편화된 시대에 물리를 배우면, 물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이렇게 지극히 나다운 생각을 내려놓고, 물리학자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연구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호기심이 아니라 그들은 눈앞에 보이는 세계를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세계의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는지 조금은 알 듯싶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완벽해 보였기 때문에, 이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만의 물음에 답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저자도 연못의 붕어를 보고 가졌던 생각에 대한 답을 평생에 걸쳐서 찾았다. 그 답이 나중에 또 바뀔 수 있지만 그럼에도 물리학자가 연구를 하는 이유까지 초공간 이론 중간중간에 녹아 있다.

 

저자는 딱 잘라서 웜홀을 통한 시간 여행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초공간>의 두꺼운 책 두께를 보고 읽기를 망설였던 나에게 <초공간>을 망설이지 말고 읽으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