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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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울대를 울렸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처음에 제목을 보고 여름 철새 중 하나인 소쩍새가 구슬피 우는 울음소리와 닮은 에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달랐다. 내 예상과는. 그래서 더 좋았다.

 

 

 


함정임. 출판사에서 오랜 시간 일을 했고, 지금은 소설가이자 후배 소설가들과 함께 소설을 쓰고 읽고 나누는 선배 소설가로 강의를 하고 있다. 『버스, 지나가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아주 사소한 중독』등의 중단편 소설집을 썼고, 『소설가의 여행법』, 『무엇보다 소설을』과 같은 세계 문학 기행집을 내고,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 『그림에게 나를 맡기다』 등의 그림 에세이를 썼다. 역자로 활동한 이력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책을 세상에 내놓은 저자는 20세기에 21세기 인간 유형인 멀티플레이어였던, 나혜석 씨처럼. 소설도 쓰고 에세이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책을 내놓은 그녀의 글을 다양한 사람들이 읽었을 것이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는 사진 에세이다. 사진보다 글이 훨씬 많은 '사진' 에세이다. 사진이 많지 않고, 그 크기도 작지만 드문드문 놓은 사진은 글을 읽다가 숨을 고르고 싶어질 무렵마다 생각의 환기를 부른다. 프라하의 카프카 뮤지엄, 러시아의 성 에우티무우스 수도원, 달이 걸린 해운대 달맞이 언덕, 베네치아 리도 해변, 프랑스의 가브리엘의 창...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창"이다. 저자는 자신의 첫 번째 글에서 말한다. "삶에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창"이라고. 그래서일까. 그 이후에 사진이 저자가 책 속에 낸 작은 창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사진은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워지지 않았다. 하얀 벽에 작게 난 창처럼. 중간중간 놓여 있다. 글을 통해 머리에 그려진 풍경과 달리 보는 순간 단번에 머릿속을 채우는 풍경까지 저자가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에 모인 글들은 / 바닷가 서재에서 / 불안과 공표, 체념과 덧없음을 떨치며 / 추모의 마음으로 / 애도 일기를 쓰듯 / 건져 올린 하찮지만 / 고유한 삶의 편린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는 목 울대까지 맺혀 올라., 혀끝에서 맴도는 말을 적은 기록들이기 때문이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제목을 읽고  한참 생각을 했다. 요즘 책 제목의 길이가 제법 길어져 그리 낯설 것 없는 제목인데,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찜찜해서 드는 기분이 아니라 더 읽고 싶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접속사 중에 하나인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같은 뉘앙스가 담겨 있어서였다. 마음에 북받쳐 오른 참을 수 없고, 괜찮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외면하지 않고 "썼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떨리는 마음이 전해지는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책 제목은 이 책의 "저자의 말" 타이틀이다. 자신이 남긴 글들에 깃든 마음이 무엇이고, 자신이 왜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는 한 마디다. 그리고 그 한마디 말 뒤에는 옅은 희망이 걸쳐져 있다. 그래서 슬픈 듯해 보이는 제목이지만 슬프지 않았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 했어'가 아니라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 했어도' 덕분에.


누구나 살면서 괜찮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는 때가 있다. 하지만 이를 '괜찮다는 말을 차마 못 했어'로 끝냈는지, 뒤에 '도'를 붙이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했던, 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발견했는지 생각해봤다. 나는 저자처럼 일기장에 내 감정을 적기도 했고, 누군가 목소리로 담은 감정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누군가 마음 가득 차오른 것을 토로한 글을 읽었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를 읽었다.

 

"창작자, 곧 작가란 무(일상)에서 유(예술작품)를 창조하는 사람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세상과 소통을 꿈꾸는 자이다. 소통을 통해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누구보다 강한 존재이다. 창작자가 지향하는 세계는 다락방의 은밀한 서랍이나 박스가 아니라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공적인 무대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생 대상을 사진으로 찍기만 했을 뿐 철저히 자기만의 골방에 껴안고 있었던 비비언 마이어와, 그녀의 미공개 유작들을 골방에서 꺼내어 세상에 알린 존 말루프의 만남은 미지의 창작자와 수집가가 시간을 뛰어넘어 공동으로 이루어낸 멋진 신세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소설가다. 처음엔 그녀의 직업을 보고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소설이라는 그 결과물이 아니라 소설을 쓰는, 읽는, 느끼는 행위에 대해 썼다. 소설 자체가 콘텐츠가 아니라, 그 소설을 읽는 콘텍스트가 콘텐츠가 된 책이다. 물론 몇몇 걸출한 작가들의 작품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읽다 보면 그 작품을 분석하는 것보다, 그 작품을 어떻게 읽었고 그 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건져 올렸는지에 집중한다. 오로지 자신이 그 안에서 무엇을 생각했는지에 집중한다.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어 그저 쓸 수밖에 없었던 기록은 그녀의 머릿속에 계속 부유했던 것들이었다. 글을 끄적이던 습관, 여행지에서 만난 옛 소설가들의 숨결, 치열하게 강독했던 작품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남긴 것들이다. 입 밖으로 낼 수 없고, 혀끝에 감돌게 남겨두었던 이유를 난 알 수 없다. 다만,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으며 든 생각은 이 책은 일기와 수필 사이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소설 쓰는 일이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이지만, 소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황홀한 순간이 있다."

 

나에게 에세이 = 수필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수필과 에세이는 다르다. 닮은 듯싶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나만의 기준에 따라 수필과 에세이는 나누어진다. 이 책을 읽으며 일기-에세이-수필이라는 범위 표를 잡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에세이다. 일기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지도 않고, 수필처럼 깨달음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부유하는 생각들을 '글'의 형태로 정리한 것이다. 글의 길이도 제각각이고, 형태도 조금씩 다르다. 같은 종이라도 만졌을 때 감촉이 모두 다른 것처럼. 이 글의 감촉도 조금씩 달랐다. 어떤 글은 보드라웠고, 어떤 글은 햇빛에 바래진 종이처럼 조금 거칠었다. 도 어떤 글은 다정하게 쓴 편지 같고, 어떤 글은 툭툭 넌지시 건네는 쪽지 같았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고, 읽는 독자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고, 특정한 누군가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그 다름이 좋았다. 일관된 것이 아니라 글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호흡을 가지고 있고, 속도를 가지고 있어 읽는 내 마음도 차분해지기 보다 동동 움직였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사랑하는 존재,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고, 듣고 싶은 호모 나랜스들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쓸 때는 자신만의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읽는 순간 그 이야기는 저자만의 것이 아니라, 읽는 독자와 함께 존재한다. 보들레르, 카뮈, 도스토옙스키, 김애란 등의 작가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듯하지만,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들었던 생각이 머리에서 떠올랐다. 그 이유는 그녀의 이야기가 그녀만의 경험을 적은 것과 평범한 일상 중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들도 함께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생각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책을 읽고 떠올린 생각과 자신이 지난날 했던 경험을 하나의 글로 완성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건 글에 저자가 소설가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이야기를 정말 사랑하고, 그 이야기를 듣고 싶고 또 하고 싶은 존재란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읽는 것이 본능에 따른 행동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책을 어떻게 읽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를 "괜찮지 않은 '고독'한 상황"을 어떻게 넘길 수 있는지를 찾으며 읽었다. 그녀의 글은 밝음으로 고독함을 넘기지 않는다. 그녀가 고독을 넘기는 방식은 의외로 담담함이다. 목 끝까지 차오른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담담하다.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그 담담함이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 힘은 문장과 그 문장에 저자가 쏟고 싶었던 메시지의 힘 덕분이다.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담담하게 힘을 뺀듯한 글에서 힘이 실려 있다.

 

"무엇을 찾을 때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낭패감 속에, 무엇인가, 정보가 잘못되었다고, 또는 그 사이 변했다고 의심한다."

 

글을 읽으며 눈에 확 들어오는 메시지가 필요한 순간이 있지만, 고독을 보내는 때에 필요한 건 눈에 확 들어오는 메시지가 아니라 살짝 숨어 있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메시지가 아닐까. 그리고 그 메시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지게 하는 무언가가 아닐까. 저자의 말처럼 현대 사회는 소설가 뿐만 아니라 소설가의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험난한 장소다. 하지만, 그 안에서 괜찮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삶을 견뎌내는 무언가가 필요한 법이다. 그 방법이 작가처럼 쓰기가 아니어도 괜찮다. 작가도 자신의 곁에 책만 둔 것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풍경을 눈에 걸어두었고, 조성진의 쇼팽 연주곡을 귀 자락에 놓았다. 여행하며 사색하길 즐겼고, 문학과 관련 없는 강연에서 무언가를 찾아냈다. 그리고 자신의 지난날과 읽은 책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이든, 과거 어느 때이든 그 경험을  되새기는 때 해소되는 것이 있다면 괜찮은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인생이란 긴 여행길과 같다. 모험의 다른 이름인 여행은 돌발성을 속성으로 한다."

 

괜찮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는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은 마음이 끌어 올랐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오묘한 책이었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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